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자. 이 문제에 대해 쉽게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모두가 나름의 애를 써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조형물을 만들고, 작곡을 하는데, ‘예술성’이라는 기준 아래 그 창작자의 역량을 평가받으면서도 정작 ‘예술성’에 대한 확실한 기준을 제시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시대마다 아름다운 것은 바뀌니까. 결국 예술성도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미국과 소련이 이데올로기로 대립하던 냉전시기의 일이다.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였다. 개인보다 전체를 중시하고, 질서 유지와 절대적으로 균등한 분배를 추구하는 사회였다.
예술의 목적과 역할도 이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새로이 정립되었다. 불평등하고 부정한 현실의 민낯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비판적 리얼리즘’으로는 부족했다.
이제는 예술이, 그렇다면 이 불행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짚어주는 기능을 해야 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소련 중앙정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지금도 공산권에서 유행하는 예술 사조이다. 선전과 선동에 특화된 예술 양식인 까닭이다. 북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선동 포스터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표 격이다.
1932년 4월 23일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소련의 모든 문학 조직이 해체된다. 그리고 1934년 제 1차 소비에트 작가동맹 회의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문학강령으로 채택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을 따르지 않는 모든 예술 작품은 불법이 되는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하에서 예술은 정치의 하부가 된다. 스탈린은 말했다. “작가들이여, 영혼의 엔지니어가 되어라”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은 사회 구성원들을 사회주의 정신에 맞게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회화 작품은 공산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캠퍼스에 그려낸다. 문학 작품은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영웅적 인물이 현실의 병폐를 해결하는 플롯 위에서만 유효하다.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 작품의 하나. 하부의 문구는
“진실된 길을 따르라, 동지여!”이다 (출처 : Getty images)
당대에는 소련 이외의 나라에서도 공산주의자 예술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던 때였다. 미국 입장에선 난감한 일이었다. 냉전은 자국의 이데올로기를 전 세계에 누가 더 많이 전파하느냐의 싸움이었다.
그런 와중에 공산주의자 예술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니 미국은 이에 맞설 새로운 예술 사조가 필요했다. 공산주의의 상징이 단결과 전체라면 자본주의는 자유와 개인이다. 예술가 개인의 자유로움이 작품에 드러나는 방식, 예술이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예술 그 자체일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했다.
미국이 답을 본 것은 유럽의 전위예술에서였다. 전쟁 이후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오는 사람들이 늘자 유럽에서 유행하던 예술 양식들도 미국으로 유입되었다. 그전에 미국은 정해진 형식이 있는 구상주의적인 예술이 유행하고 있었지만, 유럽 예술 양식의 유입으로 인해 전위 예술이 새로 유행할 수 있는 배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미국은 유럽의 전위 예술을 그대로 모방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 더 추상적이고 전위적인 미국만의 예술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국의 예술 사조가 바로 추상표현주의이다. 액션 페인팅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추상표현주의를 밀기 위해 미국 내외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프로젝트는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현재의 CIA)이 맡았다. 유럽에서는 ‘문화적 자유를 위한 회의’라는 전위 조직을 통해 전시를 개최해 추상 표현주의를 알렸다.
미국 내에서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이 강했던 비평가를 통해 추상 표현주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생기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대공황 이후에는 경기침체로 어려워진 예술가들의 생업을 돕는다는 취지에서 WPA 연방 아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의 활동의 장이 되었다.
미국 중앙정보국의 러시아 담당이었던 도널드 제임슨은 추상표현주의에 대해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실제보다 더 양식화되고 완고하고 제한된 미술로 보이게 만드는 미술”이라고 평한 바 있다.
이 뿐 아니라 추상표현주의는 그 예술성에 있어서도 전 세계적인 인정을 받으며 미국을 미술의 중심지로 만들어냈다. 예술의 중심지를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뉴욕으로 옮기기까지 했으니 제 몫을 넘어 그 이상의 역할까지 해낸 기특한 예술 양식이었다.
하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가장 본연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추상표현주의는 역설적이게도 상당히 정치적인 예술이 된다. 결국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는 둘 다 정치적 배경에서 부흥한 셈이다.
물론 현대에 와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정치적 목적성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받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예술성이 바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나 여전히 찬양받는 추상표현주의나 그 정치적 성격이 직접적이었느냐, 교묘했느냐의 문제이지 둘 다 정치적이긴 매한가지다.
지금까지 정치적인 예술에 대해 얘기했다.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이루어진 정치적 예술에 대해서만 말하긴 했지만 사실 모든 예술은 넓은 의미에서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시대를 반영하고 있어도 정치적이고, 그 시대를 반영하지 않으려 애를 써도 정치적이다. 예술가가 어떤 노력을 했든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해석하려 들 것이다.
시를 쓸 때 언어적 아름다움에만 골몰하여 써도 ‘이것은 당시의 피폐한 시대상과 이에 따라 변색되어가는 예술의 의미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이 일어나 발생한 경향성으로, 예술의 정치성을 굳이 지양하지 않는 세력이 있는 한편으로 이러한 기조에 반감을 가지는 또 다른 (결국은 정치적인) 세력도 있었음을 보여 준다’고 평가를 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결국 ‘예술은 허구’라는 말에 동의해야 할까. 예술은 결국 ‘아름다운 것’인데, 예술로 인정받는 기준이 예술 내부에 명확히 있는 것이 아니다. 외부에 따라 계속 변한다. 한마디로 답이 없다.
답이 없고 실체가 없으니 ‘허구’라고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예술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면, 일반대중에게 ‘예술성’의 의미는 더욱 설 자리를 잃는다. 정치는 순수하지 못한 것, 계산적인 것으로 여겨져 환멸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그런데 예술이 이 정치와 엮어져 버린다면 회의의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그런데 ‘허구’라는 표현을 권하고 싶진 않다.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 ‘없는 것’ 취급받을 이유까지 되진 못한다. 그리고 정치가 꼭 밉게만 볼 것도 아니고, 정치가 개입된다 해서 꼭 그 아름다움이 바래는 것도 아니다.
‘예술성’의 실체는 모호하다. 예술은 많은 경우 정치와 연관되어 있다. 그렇다고 세상 다 잃은 표정을 짓진 말자. 순수하다고 믿었던 무언가가 사실은 순수하지 않았다고 ‘허구’라며 손가락질하지도 말자. 답이 없기에 오히려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순수함의 실체 역시 예술성만큼이나 모호하다. 정치가 개입되어 순수함을 잃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순수함이 만들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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