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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발자취를 찾아서] 민본정책과 왕권견제 공약으로 조선을 개국한 정도전의 정치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7-08-25

 

단양팔경의 제1경은 남한강변에 우뚝 솟은 세 바위, 도담삼봉이다. 이곳을 들르거나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이 도담삼봉에 감명 받아 자신의 호를 만들어 썼다는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1342~1398)이다.

 

정도전은 이 단양에서 죽령 넘어 동남쪽 영주 출신이다. 하지만 삼봉이라는 호 때문인지 그는 충청도 단양 태생으로 운위되기도 하고 도담삼봉에도 총명한 소년 정도전의 전설이 전해진다.

 


[민주주의의 발자취를 찾아서] 민본정책과 왕권견제 공약으로 조선을 개국한 정도전의 정치 관련이미지1 

출처 :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전설에 따르면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 땅에 있었다. 그런데 남한강에 홍수가 나서 정선에 있던 세 바위가 떠내려 오다가 지금의 단양 자리에 멈춰 버린 것이었다. 이는 단양 사람들에게 낭패였다.

 

원래 세 바위의 소유주(?)였던 정선 고을 사또가 단양에 사람을 보내 세 바위는 정선의 명승(名勝)이었으니 그에 대한 세금을 내라고 윽박지른 것이다. 단양 사람들은 꼼짝없이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한 영특한 소년이 등장한다.

 

바로 그가 정도전이었다. 정도전은 정선에서 세금을 거두러 온 이에게 호통을 친다. “저 눈에 거슬리는 바위 때문에 우리도 아주 골치요. 세금을 거두지 말고 그냥 다시 가져가시오. 어서!” 바위를 옮길 도리가 없었던 정선 고을 사또는 더 이상 세금을 강요하지 못했고 도담삼봉은 단양의 으뜸 경치로 남게 됐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발자취를 찾아서] 민본정책과 왕권견제 공약으로 조선을 개국한 정도전의 정치 관련이미지2  
출처 : 나무위키


이 전설 속 영특한 소년 정도전. 그는 우리 역사에서 보기 드문 풍운아였다. 기울어가는 왕조에 태어나 사회적 모순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구체제의 문제를 파악하고 그 대안을 고민하였을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힘을 구하고 틀을 만들었던 정치가이자 혁명가였다고나 할까.

 

[민주주의의 발자취를 찾아서] 민본정책과 왕권견제 공약으로 조선을 개국한 정도전의 정치 관련이미지3 

출처 : http://news.joins.com/article/20539625


정도전은 공민왕 9년(1360)에 과거에 급제했고 이후 관직에 나아갔다. 하지만 그의 관직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권세 가진 이들에게 유순하지 못했고 스스로도 맘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았다. 이른바 모난 돌이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이인임 같은 당대의 권력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그는 오늘날 전남 나주 부군의 거평 부곡으로 유배된다. 극도의 가난과 절망에 허덕인 귀양살이였지만 거기서 그는 그때껏 깨닫지 못했던 백성, 즉 민(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는다.

 

일자무식 농투성이 백성들이 어설픈 선비들보다 더 삶의 지혜에 밝다는 사실, 그들에 의해 지탱되는 나라와 임금과 권세가들이 그들을 악랄하게 깔아뭉개고 있다는 모순을 새삼 발견했고, “나라도, 임금도 백성을 위해 존재할 때만 가치가 있다."(삼봉집)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10여년의 귀양과 낭인 생활을 거치면서 고려 왕조에 충성하던 유학자 정도전은 백성들에게 유익한 새로운 체제를 꿈꾸는 정치가로 거듭난다.

 


땅 파고 곡식 심어 수확하며 살아가던 농민이 국민의 태반이었던 고려에서 토지 제도는 경제의 근간이자 착취의 본산이었다. 그러나 고려 말엽 이 토지 제도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무너져 있었다. "토지제도가 무너지면서 세력 있고 강한 자는 남의 토지를 겸병해서 농토가 끝도 없이 이어졌지만, 가난한 자는 송곳 꽂을 땅도 없게 되었다.

 

"(조선경국전)는 토로는 그의 문제의식의 출발 지점이자 핵심이 된다. 다시 관직에 오른 이후 정도전은 열정적으로 토지 개혁 추진에 나선다. 그의 생각은 ‘계민수전(計民受田)’으로 수렴된다. 모든 땅을 국유로 하고 ‘백성들을 헤아려 그 식구 수대로 땅을 분배 한다’는 쉽고도 분명한 원칙이었다.

그러나 당시로서도 그렇고 심지어 21세기의 지구상에서도 ‘이상적’일 수 있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토지의 사유를 인정할 경우 토지가 부의 축적 수단이 되어 한쪽에서는 지주 한 사람이 만 명의 양식을 독점하고 또 한쪽에서는 한 뙈기 땅이 없어 유랑걸식하거나 도적의 무리에 들어가는 부익부 빈익빈의 폐해를 막아보자는 데 근본 취지가 있었다.(정도전을 위한 변명, 휴머니스트, 조유식) 요즘 말로 하자면 정도전의 생각은 ‘토지 공개념’이었다.


[민주주의의 발자취를 찾아서] 민본정책과 왕권견제 공약으로 조선을 개국한 정도전의 정치 관련이미지5 

출처 : http://www.gs.hufscon.com/index.php?title=%EC%A1%B0%EC%84%A0_%EA%B2%BD%EA%B5%AD%EC%A0%84



1366년 신돈이 전민변정도감을 내세워 권세가들에게 빼앗긴 땅을 돌려주고 노비가 된 이들을 양민으로 돌리는 개혁을 감행했을 때 울렸던 백성들의 환호를 정도전은 똑똑히 기억했다. 신돈 개인의 교만과 도덕성 실추와 더불어 수구 세력의 반격을 거쳐 신돈이 몰락하고 그 개혁이 끝장나버리는 것도 보았다.

 

이미 고려 문벌 사회는 개혁을 감당할 여력도, 추진할 능력도 상실하고 있음을 정도전은 절감했을 것이다. 그의 선택은 역성혁명이었다. 동북면의 실력자 이성계를 찾아가 “이 군대로 못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라고 눙칠 때, “단지 썩지 않을 사문이 있다면(只消不朽斯文在), 후세에는 당연히 정씨 사람 나오겠지(後日當生姓鄭人)라고 스스로의 역사적 위치를 자임할 때, 그는 이미 새로운 체제를 계산하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발자취를 찾아서] 민본정책과 왕권견제 공약으로 조선을 개국한 정도전의 정치 관련이미지8 

출처 : 나무위키(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B%8F%84%EC%A0%84)

 

 


백성을 위한 나라, 백성을 근본으로 한 나라, 백성을 두려워할 줄 아는 나라. 이는 조선 건국 후 정도전이 쓴 <조선경국전>의 서장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서장의 제목은 정보위(正寶位)다. 즉 ‘임금의 자리를 바르게 함에 관한 것이었다. 임금의 자리를 바르게 한다는 것은 정권을 바로 세운다는 뜻이다.

 

정도전은 올바른 정치의 핵심이란 올바른 정권을 세운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 조유식 저, 휴머니스트) 그 서장에서 정도전은 민본주의 사상의 고갱이를 정확히 제시하고 있다.

“민심을 얻으면 민은 군주에게 복종하지만 민심을 얻지 못하면 민은 군주를 버린다. 민이 인군에게 복종하고 인군을 버리는 데에는 털끝만큼의 차이밖에 없다. 그러나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사심을 품고서 구차하게 해서도 안되고, 도를 어겨 명예를 구해서도 안된다. 그 얻는 방법은 역시 인(仁)으로써만 가능하다. 인군은 천지가 만물을 생성시키는 마음씨를 자기의 마음씨로 가지고 차마 함부로 할 수 없는 마음씨로서 정치를 행해야 한다.”

‘백성들은 군주라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어버리기도 한다.’는 맹자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며, 권력의 정당성이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설파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이라면 정도전은 ‘인군에게 복종하고 인군을 버리는 데에는 털끝만큼의 차이 밖에 없다’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힘은 군주 개인이 아니라 그 군주가 ‘섬기는’ 백성들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고 반포한 즉위 조서 역시 정도전의 솜씨였다.

 

 

 

[민주주의의 발자취를 찾아서] 민본정책과 왕권견제 공약으로 조선을 개국한 정도전의 정치 관련이미지9 

 


“하늘이 백성을 내면서 통치자를 세우는 것은 백성이 잘 살도록 보살피고 편안히 다스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금의 도리를 잘하고 못하는 데 따라 인심이 따르기도 하고 배반하기도 하는 것으로서 하늘의 의사가 가고 오고 하는 것도 다 여기에 달렸다.” 또 그는 결코 ‘어진 임금’에게만 의존하며 착하게 사소서 어질게 다스리소서 충언만 하는 신하를 마다했다.

“군왕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으니 재상은 군왕의 아름다운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군왕으로 하여금 대중(大中)의 지경에 들게 해야 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왕은 세습되지만 재상의 자리는 경쟁과 경험을 거쳐 등용되는 이가 맡는다.  이 부분에서 왕이 될 야심에 그득했던 태종 이방원과 부딪치고 끝내 죽음을 맞이하지만 국왕의 권력에 의지하기보다는 능력이 입증된 재상 중심의 정치를 꿈꾸었던 정도전은 ‘입헌군주제’의 단초에 가까운 사상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 발자취를 찾아서 관련이미지10 

출처 :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그의 정치적 포부는 일단 좌절되었으나 세종 대에 왕권과 신권의 조화 속에 이룩된 문화적 황금기로 구현됐다. 역적으로 단죄됐고 본인만큼은 조선 말기에 이르도록 신원되지 않았음에도 초기의 명신 신숙주가 남긴 한 마디는 민본주의 정치가 정도전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개국 초에 무릇 나라의 큰 규모는 모두 선생이 만들었으며 영웅 호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으나 선생만한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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