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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민주주의] 직선제를 위한 노력, 6월 항쟁 당시의 거리를 걸어보다.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7-07-23

 

[선거와 민주주의] 직선제를 위한 노력, 6월 항쟁 당시의 거리를 걸어보다. 관련이미지1 

6월 항쟁 관련 사진

 

 

30년 전 6월,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손으로 뽑고 싶었습니다. 말 그대로 대통령직선제(大統領直選制)를 원했던 셈이죠. 이에 국민들은 손을 맞잡고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서울역부터 시청, 광화문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에서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제5공화국은 최루탄으로 대응했죠. 1987년 6월 9일, 당시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고, 분노한 국민들은 광장으로 다시 모여들었습니다. 이후 계속된 시위로 인해 결국 ‘6.29 선언’이 이뤄졌는데요. 6월 항쟁으로 인해 27년 군부독재는 모두 끝나고,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회복됐습니다.

 

 

[선거와 민주주의] 직선제를 위한 노력, 6월 항쟁 당시의 거리를 걸어보다. 관련이미지2

 

6월 항쟁 관련 사진 

 


따라서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9차 헌법 개정이 진행된 것입니다. 헌법 개정에 따른 현재 정치체제를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것도 6월 항쟁이 한국 정치와 법률 제정의 기초가 됐고, 6월 항쟁이 1987년에 일어났음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30년 전 사람들이 어떤 심경으로, 어떤 마음으로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에, 당시 국민들의 열망이었던 대통령직선제와 한 표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직접 항쟁의 시작, 민주화의 성지인 ‘명동성당’부터 광화문까지 직접 걸어보았습니다.

 

 

[선거와 민주주의] 직선제를 위한 노력, 6월 항쟁 당시의 거리를 걸어보다. 관련이미지3 

(맑은 하늘 아래, 우뚝 솟아있는 명동성당.)

 


2017년 6월 10일의 명동성당은 한산합니다. 명동에서 먹거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관광객부터, 성당 안에서 조용히 미사를 드리고 있는 사람까지.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격한 시위가 벌어졌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1987년 6월 10일, 그날 저녁에는 서울시내 곳곳에서 민주화를 위한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저녁 6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차량들이 경적을 일으키자, 시민들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경찰이 시위에 동참하는 시민들을 보이는 족족 체포하자, 일부 시위대는 명동성당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선거와 민주주의] 직선제를 위한 노력, 6월 항쟁 당시의 거리를 걸어보다. 관련이미지4 

(명동성당 내부의 모습. 매우 조용하다.)

 


경찰은 시위대를 체포하려 하지만, “수녀들이 나와서 앞에 설 것이고, 그 앞에는 또 신부들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 맨 앞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를 밟고 신부들을 밟고 수녀들까지 밟아야 학생들과 만날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김수환 추기경이 막고 있어서 함부로 성당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국민들은 명동성당 안에서 농성을 벌이던 시위대들을 응원하면서, 헌금의 일환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명동성당에 넣어주기 시작합니다. 화이트칼라, 넥타이 부대로 대표되는 직장인들은 전경들에게 꽃을 선물하고, 음식점 상인들은 시위대들에게 김밥을 말아주며 응원하기도 했죠.

 

 

[선거와 민주주의] 직선제를 위한 노력, 6월 항쟁 당시의 거리를 걸어보다. 관련이미지5 

6.29 민주화선언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명동성당에서 자리를 옮겨, 1987년 6월 18일에는 경찰이 쏘아대는 최루탄을 반대하는 ‘최루탄 추방대회’가 전국에서 열렸습니다. 특히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렸는데요. 서울광장부터 광화문까지, 많은 국민들이 민주화를 위해 광장에 다시 나왔습니다.

마침내 6월 29일. 국민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6.29 선언’을 이뤄냈는데요. 6월 항쟁의 마지막은 7월 9일 서울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입니다. 100만 명 정도가 참여한 이한열의 장례식을 끝으로, 한 달에 걸친 민주항쟁이 막을 내렸습니다.

6월 항쟁은 국민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것과 사실상 대한민국에 진정한 민주주의, 민주화를 달성한 시점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타는 목마름으로’ 그렇게 갈망했던 대통령직선제, 한 표의 소중함.

이번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직선제가 이뤄진지 ‘30주년’을 맞아 더욱 의미 있었습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습니다. 저 또한 이번 대통령 선거가 의미 있었는데요. 30주년과 함께 제 인생에 있어 첫 번째로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선거와 민주주의] 직선제를 위한 노력, 6월 항쟁 당시의 거리를 걸어보다. 관련이미지6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대통령직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하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삶 속에 살고 있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고 싶어도 뽑을 수 없었던 그 시절. 하지만 그 시절을 바꾸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나왔고, 지금 우리는 편안하게 투표 당일 투표장에만 가면, 또 사전투표 때에는 전국 어디든지 정해진 시간 내에 투표소만 찾아가면 투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한 표. 그 한 표는 많은 사람들의 피, 땀, 눈물이 담겨 있다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조수연 

 

첨부파일 : asas1231212122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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