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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민주주의] 민주주의? 중우정치?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7-05-09

 

 

“한국의 민주주의에서 민중은 격노한 신과 같다” 지난 해 12월 19일,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이하 FP)에 실린 글이다. 이 글을 기고한 사람은 “집단의지와 중우정치의 경계는 아슬아슬하다”며 광장의 외침이 법치를 흔들고 있다고 우리의 촛불 정국을 비판했다.

 

물론 필자를 포함한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이런 비판에 혀를 찰 노릇일지 모르지만, 이 말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민주주의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민주주의 중우정치 관련이미지1 

[자크 다비드 - 소크라테스의 죽음]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에 의해 죽었다.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가장 중요한 제도적 발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완벽한 것은 없듯, 민주주의에도 위험성은 존재한다. 위대한 철학자인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혐오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 존경받아 마땅한 자신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를 죽이는 기반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판결을 맡았던 배심원 500명 중 대다수는 권력과 금력을 쥐고 있는 소피스트 일당들에게 사주 받은 사람들이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부당함으로 스승이 살해당했으니 이것에 대한 그의 분노와 회의감은 당연했을지 모른다.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에게 민주주의 시스템은 악법이었다.

 

중우정치(mobocracy)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타락한 민주주의를 비판하며 만든 말이다. 말 그대로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정치를 뜻한다. 그들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그저 빈민들이 자신의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다수의 지위를 이용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때문에 민주주의 대신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

 

철학자들이 나라들에 있어서 군왕들로 다스리거나, 최고 권력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진실로 철학을 해야 한다’는 철인정치를 말한 바 있다. 다수의 사람보다, 소수의 현인이 통치하는 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더 적은 위험성을 가진다고 본 것이다.

 

다수의 결정권자들이 분노 혹은 슬픔에서 나타나는 비이성적 판단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돈에 매수되거나, 권력에 눈이 멀게 됐을 때 잘못된 의사결정을 진행하는 경우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다. FP에서 한국 민중을 격노한 신으로 비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 내에서 다수의 행동과 판단은 옳고 그름의 유무를 떠나 진행되게 마련이다.

 

민주주의 중우정치 관련이미지2 

 


한 사람이 어떤 사안에 대해 옳은 결정을 할 확률이 반반이라고 가정한다면,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의 원칙이 항상 옳은 판단이라고 볼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기제를 가지고 있지만 기본 원리는 다수결에 바탕을 두고 있다. A와 B 두 가지의 옳고 그름의 선택지가 있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에 대해 사람들이 투표를 할 경우, 사람들이 표를 던지게 될지는 정해져있다.

 

그러나 선택지가 외부의 압력이나 선동가의 선동이 작용하는 경우, 선택지의 옳고 그름의 모호한 경계에 있는 경우엔 사람들은 온전히 개인의 가치관이나 판단뿐만 아니라, 소수의 언변가의 사상, 대중매체의 정보, 심지어 사실이 아닌 루머들이 반영된 투표가 생겨날 수도 있다.

 

민주주의적 방식을 통해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어떤 것이 선택되고,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마르공화국의 국민이, 나치당이 그랬다. 앞서 언급했던 FP의 글에서 촛불민주주의에 대해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많은 외신들은 국내 촛불시위에 대해 ‘높은 수준의 시위와 민주주의’라며 극찬했지만, 그리고 실제로 어마어마한 일들을 해낸 것도 사실이지만, 본래 민주주의란 개개인 참여의 순기능과 함께 집단지성의 능력에 대한 우려가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을지언정 현대사회에 가장 적합한 정치형태임에는 틀림없다.

 

삼권분립, 국민의 투표는 한 개인의 요구나 목소리가 국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소수의 기득권층에 의해 나라가 독점되지 않을 수 있도록 막을 수 있는 가장 획기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여러 이해관계들이 존재하는 현재의 다원화 사회이면서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선 근거 없는 선동이 대중의 집단 광기로 전이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은 민주주의이기에 낮은 가능성의 중우정치가 색깔론이나, 가짜뉴스 등 차고 넘치는 정보와 선동들로 인해 언제 발현될지 모를 일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 다수의 잘못된 판단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옳은 표를 행사 할 수 있는 다수가 돼야 한다.

 

 

민주주의 중우정치 관련이미지3 


대선을 앞두고 선거열기가 뜨겁다. 매 선거마다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지고, 각종 루머가 등장한다. 하루 종일 여기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보지 않는 이상 모든 사실들을 혼자 검증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후보의 인상으로,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우연히 접한 기사를 보고 자신이 투표할 사람을 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투표권을 행사하려는 후보의 공약은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의 선순환은 유권자의 관심에서 시작한다. 유권자의 참여와 관심은 정치에 대한 견제 수단으로 작용하며 정책적 발전을 야기한다. 더 나아가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 정치인들 역시 보다 깊이 있는 사고를 갖추려 노력하게 된다.

 

대중의 맹목적인 믿음이나 무관심, 포퓰리즘으로 불리는 대중영합주의 등으로 인해 집단이, 혹은 국가가 잘못된 길을 걷게 됐던 많은 예시들이 있다.

 

그 중 무엇보다 유명한 일화는 바이마르공화국이 보여줬던 국민적 광기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사회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헌법을 통해 새 출발을 시작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했고, 민주적 방식의 선거제도가 도입됐다.

 

이는 1919년 당시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자유롭고 민주적인 헌법이자, 현대 복지국가의 초석으로 불리는 헌법으로 평가 받는다. 이런 나라에서 국가적 어려움이란 명분으로 히틀러의 나치당이 선거를 통해 집권한 일은 민주주의가 완벽한 정치 형태가 아님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당대 최고의 민주적 기반을 가진 나라에서 최악의 반민주주의자를 만들어 낸 것을 두고 바이마르공화국은 지금까지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슬픈 평을 짊어지고 있다.

 

바이마르공화국의 실패 이후, 선진 정치국가로 인정받게 된 독일은 1999년 연방정치교육센터와 주정치교육센터에서 ‘민주주의는 정치교육을 필요로 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뮌헨선언’을 했다. 교육을 통해 자국민이 정치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과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이롭다는 뜻이겠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국가차원의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이 부족한 편이다. 유권자들은 매 선거마다 정치 효용성에 실망하며 투표에, 정치참여에 관심을 돌린다.

 

그리고 다시 낮은 투표율에 대해 고민한다. 민주주의에서 주어지는 유권자의 권리를 유권자 스스로가 지켜낼 의사가 없다면 민주주의든 무엇이든, 의미가 없다. 우리가 먼저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핵심이 그것이다.

 

민주주의 중우정치 관련이미지4 

 

다시 플라톤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민주주의가 아닌 철인정치를 말했지만, 나머지 주장을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가 말한 이상적 국가는 각각 통치자, 수호자, 생산자로 구성돼 조화를 이뤄야 하며 각각의 역할을 수행할 때 국가적 차원의 정의가 실현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오늘날 다원화 사회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농민의 일이 있고, 음악가의 일이 있고, 공무원들의 일이 있다. 사람들의 조화를 통해 사회가 유지된다. 동시에, 이들은 사회적 지위와는 별개로 국민으로서 공통된 참여의 권리를 갖는다. 그것이 투표다.

 

이것을 통해 바른 대리인을 선별하고, 운영을 감시하고 견제하며 민주주의 체제가 상호 조화롭게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였던 것도 이런 권리 실현의 한 형태였다. 무엇보다 현명한 권리 실현을 위해선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선행돼야 한다. 플라톤이 걱정했던 어리석은 다수의 지배는 국민의 관심과 사유를 통한 현명한 다수의 선발을 실현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 수준과 같다’는 말은 꼭 틀린 말은 아니다.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투표를 통해 국민이 직접 선발하는 만큼 유권자가 내리는 판단 하나하나가 직·간접적으로 정치가를, 나라를 움직인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기까지 걸렸던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비교하고, 검증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민중은 격노한 신인가, 합리적 이성인가. FP의 촛불을 향한 비판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줄 수 있길 바란다. 오히려 너무나 건강하고, 역동적인 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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