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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정치] 아이웨이웨이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7-03-24

 

아이웨이웨이는 2017년 현재 가장 뜨거운 작가다.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끊임없는 감시와 탄압을 받아온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을 2015년 12월 영국 런던 왕립 예술원의 광장에서 만났다(전시 제목은 작가의 이름을 딴 '아이웨이웨이'다.

 

작가의 명성을 가늠할 수 있다). 아이웨이웨이는 2011년부터 4년여동안 정부로부터 구금된 상태로 지내는 상황에서 이 전시를 준비했다. 구금의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블로그와 트위터 등을 통해 중국정부를 비판하는 글들을 끊임없이 내보냈기 때문이다.

 

그의 SNS는 그 자체로 하나의 매체이자 무기다. 구금이 아니라도, 그가 이날의 전시를 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렵사리 중국정부로부터 여권을 돌려받았다. 이번에는 영국에 6개월짜리 비자를 신청했지만 비자기간이 20일로 제한됐다.

 

영국 언론에서는 비자기간 제한이 그 해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영국방문 일정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 뒤 실제로 현재 수상이 된 당시 테레사 메이 내무부장관이 6개월 기간의 비자를 발급하고 작가에게 사과하면서 논란이 수습됐다.

 

[명작과 정치] 아이웨이웨이 관련이미지1 
<아이웨이웨이 / 출처 : 플리커>

 


작가만큼이나 작품도 사회적 맥락이 짙은 만큼 화제를 몰고 다닌다. 줄을 길게 서서 입장을 할 정도로 아이웨이웨이의 전시는 찾아오는 관람객들로 붐볐다.

 

최소한 30분이라는 안내직원의 말에 우선 ‘나무’라는 작품을 둘러봤다. 중국에서 죽은 나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피안과 현실의 중간영역을 상징하는 매개물로 신성시된다. 광장 한 가운데 자리잡은 나무 둥치들은 흡사 하늘에 제를 올리듯 육중한 몸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왜 하필 나무일까?

 

사상 최초의 헌재에 의한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결정이라는 역사적 국면에 아이웨이웨이의 나무를 떠올린 것은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이 준 인상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 파면으로 60일동안  대통령이 없는 궐위의 시대를 살아갈 대한민국 공동체의 모습을 그 나무들이 은유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헌법재판관 전원의 뜻으로 창출된 대한민국 정치·사회적 공백을 책임져야하는 것은 바로 그 속에서 살아갈 바로 주권자인 우리 자신이다. 환호와 탄식이 뒤섞이고, 환희와 좌절이 어우러져야 할 60일이 눈앞에 있다.

 

그 끝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고, 우리는 다시 한번 선거를 통해 우리 손으로 또다시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 그 때까지 우리는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닌 듯 중간계의 영역에서 묵묵히 땅에 발을 디딘 나무둥치처럼 각자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아이웨이웨이의 '나무'는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엄밀히 나무 '모양'이다. 진짜 나무지만 나무가 아니다. 중국 남부의 산에서 나고 장시성의 한 시장에서 팔린 나무의 일부를 조합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육중한 사이즈의 나무는 같은 하늘 아래 있는 수많은 개인들을 나무라는 상징으로 묶어내겠다는 듯 묵직하고 웅장했다. 옛 이야기 속에서 마을 초입에 있는 나무 한 그루가 하나의 공동체의 운명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등장하듯, 나무는 세상 어디에나 있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 사이에 늘 존재하는 대상이다. 왕립 예술원 광장의 나무들도 그러했다.

 

 

[명작과 정치] 아이웨이웨이 관련이미지2 
<출처 : 한겨레 신문 제공>


작가는 2009년부터 수년 동안 장식조각으로 판매되는 나무조각들을 사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직접 조립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대형 산업용 볼트로 결합돼 쌓아올려진 나무의 인공적 느낌은 기이하다. 높이 7미터의 나무 8그루로 이뤄진 숲은 각각이 나무 형상을 한 인간 모양의 조각상이 모여 시위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전시장을 찾은 그날따라 영국의 겨울 하늘도 회색빛으로 침울했다. 작가가 제각각의 나무 조각들을 하나로 엮어낸 이유는 인종적으로 다양한 민족을 하나로 묶기 위한 중국정부의 국가주의에 대한 작가의 반응이기도 하다. 그 기괴함에는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담겨 있다. 동시에 중국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작가의 포부가 담겼다. 

 

 이 나무 숲은 전시 주체가 낸 비용이 아니라 영국에서 자발적인 후원금(약 2억원)으로 작가의 베이징 스튜디오에서 런던 왕립 예술원 앞뜰까지 옮겨졌다는 점도 특이했다.

 

우리가 60일의 공간 안에 뿜어낼 우리의 욕망은 어떤 모양일까. 그리고 선거를 향해갈 각 정당의 대선주자들은 그 욕망에 어떤 미래를 던져 지지를 얻을까. 그리고 그 광장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려 나아갈까.

 

지금은 사라진 옛 고향 마을 어귀에 있던 당산나무를 떠올려 본다. 작가의 나무가 갖고 있는 인공적 기괴함과는 또 다른 세월의 더께를 그대로 안고 있는 나무와 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공동체의 한판 굿을 말이다. 당산굿이 벌어지는 기간 동안 마을 사람들은 묵은 감정을 해소하고 화해의 장이 펼쳐진다.

 

지역에 따라 굿판은 줄다리기로 대신하는가 하면 유교식 제사가 치러지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가 참여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내용 없이 '모두'라는 말만 앞선다면 그야말로 허황된 정치적 숙어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말했듯 "대통령의 성실함이 추상적 어휘라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떠올려본다.

 

인간은 구체적인 나무 한 그루와 나무가 상징하는 추상적인 사고들의 사이에 존재한다. 보다 나은 집단이 되기 위해 인간은 나무를 바라보고 의지하며 공동체의 '장'을 만들어냈다. 내가 한 겨울 바라본 아이웨이웨이의 나무는 삶과 죽음의 사이에 있다. 봄이 되면 녹색 잎이 새로 나겠지만, 죽은 고목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겨울나무는 우리의 다가올 60일을 닮았다. 아니다.

 

'나무'는 부활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기적을 바라기는 어렵다. 60일 뒤 우리에게 올 새로운 정부의 모습이 어떨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나무'는 새 잎을 틔워낼 것이다.

 


*위 내용은 외부 필진의 개인적 의견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어영 한겨레신문 정치부 기자.
탐사보도팀,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한겨레21 등을 거쳤음. 한국기자상(42회, 43회),관훈언론상(29회), 민주언론상(20회) 수상. 저서 <은밀한 호황>(공저)

첨부파일 : mel2017032100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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