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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속 민주주의] 광주에서의 예술 산책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6-09-01

 

어렸을 때부터 가족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광주에는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었다. 내가 태어난 경상도와 섬진강 건너편 전라도는 가깝고도 멀었다. 처음 가 본 건 막내 사촌의 결혼식 때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삼촌은 광주여자를 만났고, 사랑의 대가는 딱 예상만큼 혹독했다.

 

 80년대 당시는 지역감정이라는 단어 이전에 그저 이상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물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의 사랑은 투쟁 끝에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의 행사로 결실을 맺었다. 어쨌든 덕분에 난 미국도, 프랑스도, 러시아도 아닌 광주에서 난생 처음 하룻밤 머물게 됐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그 곳의 맛이었다.

 

얇은 소고기에 밀가루와 계란을 입혀 구운 육전, 숯불에 구운 떡갈비, 알싸한 맛이 낯선 ‘천국’인 갓김치 등 광주 음식 특유의 감칠맛은 그들이 내뱉는 사투리에서 느껴지던 골계미를 양념 삼아 전혀 색다른 차원의 맛으로 인식되었다.

 

 

[여행 속 민주주의] 광주에서의 예술 산책 관련이미지1 

 


90년대 중반, 대학생이 된 후에는 전혀 다른 이유로 광주에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성지순례라도 하듯 경건한 마음으로 걸어 다녔던 것 같다. 5.18이라는 숫자의 의미와 무게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혈기왕성한 스무살 청춘에게 광주는 단지 ‘맛있는 도시’일 수 없었다. 광주라는 도시를 생각하면 무작정 미안했고, 슬펐고, 화가 났다.

 

장갑차와 탱크 대신 택시로 가득 찬 금남로, 더 이상 검은 리본이 걸리지 않는 전남도청, 평화로운 일상을 펼쳐 보이던 전남대 정문, 넓다 못해 황량한 국립 5.18 민주묘지 등을 거쳐 광주민주화운동 기념비로 향했다. 그 앞에 서서 나는 언젠가 가족들과 다시 이 곳에 오리라 마음 먹었다. 교과서에서도, 뉴스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던 역사의 진실을 직면하게 한 광주는 스무 살인 내게 참혹함과 참담함을 넘어,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는 진리를 일러준 도시로 또 한 번 각인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95년, 광주에 비엔날레라는 미술행사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세계 50여 국, 90여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는 뉴스도 전혀 와 닿지 않았다. 비엔날레라는 행사 자체가 낯설뿐더러, 내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건 나뿐 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2년에 한 번씩, 꾸준히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역할이란 무엇인가의 화두를 던져온 광주는 20년이 지난 지금 ‘세계 5대 비엔날레’ 중 하나인 광주비엔날레를 품은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몇 번째로 큰 비엔날레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건 전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중요한 예술적 사유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여행 속 민주주의] 광주에서의 예술 산책 관련이미지2  

 


9월 2일부터 11월 6일까지 열리는 광주비엔날레의 테마는 ‘제8기후대,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다. 현재 지구촌의 달구고 있는 환경, 노동, 인권, 권력 등 사회, 정치적 현상들을 예술적으로 조망하는 작품들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올해 비엔날레에서는 광주의 역사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작품들이 대거 출품된다.

 

빅 반 데 폴(Bik van der Pol)은 오월 어머니들과 대화를 통해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한 작품 ‘직선은 어떤 느낌일까?(How Does a Straight Line Feel?)’를 내놓았고,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후부터 뉴욕타임즈를 스크랩해왔다는 더그 애쉬포드(Doug Ashford)는 ‘민주주의의 움직임이 있었던 한국의 장소들에 그림을 들고 가서 찍은 사진들, 그리고 무엇이 이루어졌는지 보여주는 네 개의 예시들’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작품을 통해 역사 현장들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건 스페인 작가인 도라 가르시아(Dora Garcia)의 작품 '녹두서점─산 자와 죽은 자, 우리 모두를 위한'(Nokdu bookstore for the living and the dead)이다. 1977년에 문 연 녹두서점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항쟁의 거점이었다.

 

시민들은 이 곳에 모여 민중신문 격인 ‘투사회보’를 만들어 배포했고, 더욱 많은 이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도라 가르시아는 이렇게 광주의 역사를 품은 채 사라진 이 공간을 예술적, 현대적으로 부활시켰다. 당시 판매했던 책들을 구해 꽂아 두었고, 서점의 상징이었던 전봉준 액자, 바닥에 관처럼 짜 넣은 책꽂이 등이 재현되었다.

 


이 기간이 되면 전국의 각종 미술관과 갤러리가‘비엔날레 특수’를 노리고 크고 작은 전시를 연다. 해외 미술계의 유력인사들이 대거 한국을 찾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광주비엔날레가 예술계만의 행사였다면, 지금과 같은 생명력과 존재감을 발휘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예술은 작가의 언어지만, 이를 즐기는 건 일반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광주비엔날레 기간이 되면 곳곳은 캔버스로 변신하고 시민들은 그 사이를 유유히 산책한다. 올해도 지역민 451명이 직접 참여해 광주 곳곳을 문화예술적인 공간으로 바꾸어놓았다. 비엔날레라는 행사가 광주에 준 것은 단순히 예술계에서의 명성이 아닐 것이다. 이 도시는 예술이 가진 치유의 힘에 힘입어 곡절 많은 현대사를 잊지 않고도 새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여행 속 민주주의] 광주에서의 예술 산책 관련이미지3 

 

 

그리하여 나는 올 가을, 20여 년 전 광주에서 결심한 가족여행을 실천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그 때처럼 이 도시를 걸어볼 생각이다. 낯선 도시를 걷는다는 건 고유의 역사와 문화, 일상의 드라마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과 다를 바 없다.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여 오히려 이국적인 느낌의 비엔날레 전시장도 예술 산책을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며, 그렇게 걷다 보면 이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일부가 된 옛 전남도청도 만날 수 있다.

 

1904년에 세워진 붉은 벽돌의 양림 교회, 광주에 남은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인 우일선(윌슨) 선교사 자택, 근대식 양반가옥인 이장우 가옥에도 들러 기웃거릴 것이다. 계엄군의 첫 발포지였던 광주고등학교 정문 인근, 전남대학교 정문, 옛 광주 MBC 사옥에서 들러서 나의 아이들에게 ‘5월 광주’의 아픈 역사를 이야기해 줄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중립적인 공간에서 대충 화해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차이와 잘못을 인정하되 생산적인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진짜 예술이며, 역사의 힘이다. 나의 아이들이 광주를 ‘맛있는 도시’, ‘부끄러움을 알게 한 도시’를 넘어 ‘예술의 도시’로 기억하길 바란다. 예술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꿈을 꾸고 있는 광주에 와야 하는 이유다.

 

 

 


                                                                                                    글 / 정수안(컬럼니스트)

첨부파일 : 2016092700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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