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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속 민주주의] 대구 두류공원에 어린 패기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6-08-10

 

중복인 엊그제,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시댁식구들이 모두 치맥페스티벌에 왔다는 것이다. 솔직히 처음엔 실소했다. 치킨과 맥주 축제라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리는 축제만 수백 개가 넘는 ‘페스티벌 춘추전국시대’인데다 심지어 메기수염축제, 청개구리 놀이축제도 있는 마당에 치맥이 빠질 리 없지 않나. ‘치맥’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메가히트 신조어이자 단순한 음주문화가 아니라 네트워크 문화에 바탕한 여가활용의 대표적 예가 됐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치맥페스티벌’은 초등학교 때 인력동원 차원에서 참가한 ‘달구벌 축제’에 비하면 훨씬 젊고 대중적이니, 대구는 회춘을 위한 비장의 무기를 선택한 셈이다. 한껏 들뜬 시어머니의 목소리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치맥페스티벌은 ‘불경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시댁 식구들을 포함한 대구시민은 물론, 외지인들도 잊지 않고 찾는 행사가 되었다.

 

덕분에 이맘때가 되면 두류야구장, 야외음악당, 228 주차장, 두류공원 로드 등 두류공원 전역이 젊음의 에너지로 가득 찬 축제의 장으로 변모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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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두류공원 / 출처 : 대구광역시 두류공원관리사무소 공식 홈페이지>

 

개인적으로, 7~8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맹위를 떨친 치킨 프랜차이즈의 상당수가 대구에서 시작했고 이것이 치맥페스티벌의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만큼이나 흥미로웠던 사실은 두류공원 일대를 둘러싼 활용 방식이었다.

 

이를테면 치맥페스티벌의 주된 무대 중 하나인 228 주차장이 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혹은 228이 무엇을 의미하는 숫자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228은 매우 보수적인 도시로 유명한 대구의 또 다른 면모이자 엄연한 역사의 흔적이다.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60년 2월 28일, 3.15 대선을 앞두고 자유당 독재에 항거하여 대구에서 일어난 학생 의거, 마산의 3.15 부정선거 항의시위로 이어지며 결국 4.19 혁명으로 이어진 바로 2.28 대구학생의거 말이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아버지는 1960년 2월 28일의 일을 종종 들려주곤 하셨다. 당시 아버지는 14살이었다. 하지만 민주당 정,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유세가 열린 일요일, 동네의 친한 형들이 떼를 지어 어디론가 향하던 그 날을 아직 기억한다고 하셨다. 학생들이 유세장에 가지 못하도록 당국이 대구시내 모든 초, 중, 고등학교에 일요일 등교지시를 내린 것이다.

 

중학생인 아버지는 토끼를 잡기 위해서, 옆 학교에 다니던 아버지의 친구는 영화 관람을 명분으로 학교에 불려갔다. 야당의 선거유세를 방해하고, 선거연설을 들을 수 있는 권리까지 차단하려는 속셈이 숨어 있는 부당한 일요일 등교 지시에, 경북고, 대구고, 경북대부속고에 재학 중이던 열 명 남짓한 고등학생들은 시위를 조직했다.

 

그리고 소규모로 출발한 시위대는 대구 반월당을 거쳐 도청으로 가는 길에 다른 학교 학생들을 합류시키며 급기야 1,200여 명까지 늘어났다. 이날 대구 시내에서는 ‘민주주의를 살리자’ ‘학원의 자유를 달라’ ‘학생을 정치도구화하지 말라’는 학생들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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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구호를 외치며 이동하는 학생들 / 출처 :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시위가 더 커질 것을 우려한 당국은 핵심 주동자만 처벌하는 것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2월 28일의 궐기는 서울, 대전, 부산, 수원 등의 학생운동으로 번졌고, 이후 6.10 만세운동, 광주 학생운동과 함께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특히 2.28 때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발표한 성명서에는 호기와 패기를 넘어 치기까지 엿보이지만, 당시 청춘들이 시국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며 이후 일련의 민주화 움직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시인 기형도는 여행길에 들른 대구라는 도시에 대해 이렇게 쓴 바 있다. ‘대구는 나에게 대통령들을 뽑은 무서운 도시, 시인들만 우글거리는 신비한 도시, 그리고 폭염의 도시로 달려들었다…’ 기형도의 대구에 대한 인상은 비단 그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여행 속 민주주의] 대구 두류공원에 어린 패기 관련이미지3 
<대구 2.28 학생의거기념탑 / 출처 : 대구광역시 달서구 공식 홈페이지>

 

그러나 어떤 성향의 도시에든 민주화의 열망은 반드시 존재한다. 두류공원에 세워진, 이날 학생들의 궐기를 기리기 위한 2.28 학생의거기념탑은 그 작은 증거다. 그것이 도시공원 조성과 활용의 잘된 예로 꼽히는 두류공원이라는 점에서, 대구시민들이 친구와, 가족과, 연인과 함께 일상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찾는 대표 명소라는 점에서 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초등학생 때인 80년대부터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달성공원 동물원만큼이나 자주 두류공원을 찾곤 했고, 철마다 메타세쿼이아, 산수유, 목련, 살구나무가 만발한 길을 걸었다.

 

애초에 명덕로터리에 있었던 2.28 기념탑이 두류공원으로 옮겨온 것은 1990년의 일이었지만, 그 이전부터 할아버지는 두류공원 순환도로 곳곳에 대구에 각인된 시대정신이 숨어 있다고 어린 손녀에게 이야기해주신 셈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민족시인 이상화의 동상이나 빙허 현진건, 고월 이장희, 목우 백기만의 시비 등은 두류공원 일대에서 도시의 온도를 높이고 있다. 비록 화려한 형태는 아니지만 말이다.

 

다시, 이번에는 시댁 조카에게서 전화가 다시 왔다. 치킨 맛 자랑에 여념이 없는 녀석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입에 침이 고였다. 서울에서 두류공원까지 당장 내달리고 싶은 걸 보니 치맥페스티벌이 그 원래의 포부대로 전 연령대를 사로잡는 행사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두류공원을 떠올리면 이런 생각도 스친다. 대구가 진정 젊을 수 있다면, 단지 이 축제 덕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학생들의 푸른 시대정신이 살아 있던 역사 때문 아닐까? 치킨을 먹으러 두류공원에 가는 학생들이 2.28 기념탑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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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2.28 학생의거기념탑 / 출처 : 대구광역시 달서구 공식 홈페이지>

 

누군가의 시대정신 혹은 정치의식이란 사회과학탐구 문제처럼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듣고, 배운 크고 작은 의식들이 차곡차곡 모여 한 성인의 소신이 되고, 이는 평생을 거쳐 완성된다.

 

그 신념이란 것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살릴 정도로 대단한 게 아니라 보수당이든 진보당이든, 어떤 쪽을 지지할 것인지 스스로 사유하고, 선택하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단지 실리적인 명분으로는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시각은 학생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매우 절실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대한민국은 ‘치킨공화국’ ‘축제공화국’이기 이전에 ‘민주공화국’이기때문이다. 
 

글 / 정수안(컬럼니스트)

첨부파일 : 20160809000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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