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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선거] 금어초의 반전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6-06-02

 

영화 <곡성>이 요즘 장안의 화제다. 나만 해도 친정 엄마와 조조로 본 후 같은 날 남편과 심야 극장을 찾을 정도였으니, 현재 5백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실감난다. 하지만 속 시원하지도, 썩 유쾌하지도 않은 이 영화가 화제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단순히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곡성>을 본 관객이라면 저마다 영화의 단서를 찾고 퍼즐을 맞추느라 날 새는 줄 모른다. (혹자는 관람이 끝난 후에도 영화에 매달리는 이런 현상을 두고 ‘곡성 효과’라 명명하기도 했다.) 충무로에서도 짓궂기로 유명한 나홍진 감독은 결론에 해석의 여지를 남겼는데, 그 결론을 자기 식대로라도 해석하기 위해서는 감독이 영화 곳곳에 꼭꼭 숨겨둔 상징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요즘 때아닌 관심을 받고 있는 꽃, 금어초가 그 수수께끼의 1단계 정도 된다.


[꽃과 선거] 금어초의 반전 관련이미지1 

<영화 <곡성> 스틸 이미지 / 출처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모르긴 해도, 많은 이들이 여러 번 놀랐을 것이다. 금어초가 가상의 꽃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꽃이라는 사실에 한 번, 영화 속에서는 흉측한 해골의 형태로 시들어 있던 그 꽃이 실은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꽃이 예쁘게 피었을 때에는 화환이나 부케의 축하의 꽃으로도 자주 애용되는 금어초가 어느 영화 속에서는 불행과 절망, 고통과 비극의 상징으로 탈바꿈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지독한 반전이다.

 

특히 영화 속의 금어초는 한 줄기에 시든 봉우리 여러 개가 있는 그 모습이 수많은 해골들이 뭉쳐져 있는 형국처럼 섬뜩해서인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졌다는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독하고 집요해지기로 유명한 나홍진 감독이 그렇게 허술할 리 만무하다.

 

아니나 다를까, 미술감독 이후경은 여러 인터뷰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막 피어난 금어초는 하얗고 조그만 꽃인데, 실제로 해골 형태의 금어초가 나올 확률이 굉장히 적다. 100송이를 키워 말리면 그 중 몇 개만 해골 모양이 된다. 그래서 농장 50평 정도를 빌려서 직접 금어초를 재배했고, 그걸 모두 거둬 말리고 선별하는 작업을 거쳐 한 상자 정도의 해골 모양 금어초를 얻었다.”

 

[꽃과 선거] 금어초의 반전 관련이미지2 
<금어초>

 

때마침 5월 말, 금어초의 색이 한창 선명할 때다. 평소 꽃꽂이를 즐기던 지인은 일주일 전에 남대문 대도꽃시장에 가서 장미 대신 금어초를 데려왔다고 했다. 영화의 재미를 차치하고, 금어초가 이렇게 알려지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는 것이 그 이유다. 북아프리카와 남유럽을 원산지로 둔 꽃답게 꽃 핀 형태가 한껏 풍요로워 보이는데, 꽃꽂이를 배울 때 많이 쓰인다는 사실은 미적인 측면과 생명력 모두 월등히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꽃 애호가들 사이에서 금어초는 싱그러우면서도 청순한 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줄기를 보면 풀보다 나무가 먼저 떠오르는 건 이 꽃이 추위와 충격에 강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많은 수의 꽃송이가 아래부터 위로 송글송글 맺히기 때문에 역동적인 데다 웅장한 느낌마저 든다.

 

흐드러지는 듯한 꽃잎이 금붕어가 화려한 색의 지느러미를 펄럭이면서 헤엄치는 모습을 닮았다고 금어초, 서양에서는 입을 벌리고 있는 용을 닮았다 하여 스냅드래곤(Snapdragon)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이름도 일단 꽃이 시들어버리면 소용 없다. 그저 ‘해골꽃’ 혹은 ‘악마의 꽃’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때아닌 금어초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독특한 형태의 꽃도 함께 조명 받고 있다. 드라큘라 이빨처럼 뾰족하게 나온 꽃잎과 원숭이 얼굴을 연상시키는 무늬가 특징인 '드라큘라 시미아', 모자 쓴 사람의 형상을 한 '오루키스 이탈리카', 진한 립스틱을 바른 듯한 입술 모양의 '사이코트리아 엘라타', 포대기에 쌓인 아기처럼 보이는 '앙구로아 유니플로라' 등이 그 주인공.

그러나 나홍진 감독이 단순히 꽃의 모양만 보고 금어초에 이런 엄청난 장치를 만든 건 아닌 것 같다.

 

실제 로마 시대의 특정 문화권에서는 주술과 저주로부터 몸을 보호해주는 영적인 힘을 가진 꽃으로 불렸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을 지켜주던 이 꽃이 어떻게 ‘욕망’ ‘탐욕’ ‘오만’과 같은 꽃말을 얻게 되었을까?

 

화통을 손으로 누르면 꽃 끝이 빠끔빠끔하는 금붕어 입 같아서 `수다쟁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일까? 형형색색 화려한 데다 모양도 특이하여 어디서나 눈길을 사로잡던 꽃이 결국 시든 후에는 공포를 안기니, 욕망과 탐욕으로 오만해지는 인간들에게 날리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같은 대상도 언제 만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그 의미가 달라진다는 건, 영원히 살고자 하는 오만한 인간들이 종종 잊곤 하는 진리이니 말이다.

 

[꽃과 선거] 금어초의 반전 관련이미지3 

<영화 <곡성> 스틸 이미지 / 출처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사실 나는 금어초에 버금가는 반전을 브라운관에서 매일 저녁 확인하곤 한다. 한 때 성공가도를 내달리던 정치인들의 추락이 헤드라인 뉴스를 장식하는 것은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 지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 세상의 존경을 받고, 대우도 받던 자였을 것이다.

 

물론 내부자가 아닌 이상 저간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도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들의 모습이 혐오스럽지는 않아야 한다. 뻔뻔하거나 비굴한 이들의 모습은 단순히 이들 자신의 권위의 추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이들을 지지해온 보통 사람들의 믿음의 추락이며, 흉측한 해골처럼 변질된 신뢰의 결과물이다. 기세 등등한 화양연화를 지난 훗날에도 떳떳하고 아름다운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영화 속 금어초가 비극을 상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면, 일상의 금어초는 절정을 지난 후에도 인간답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상징이다. 꽃이 한껏 만개하여 제 아름다움을 뽐낼 때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면 이 또한 허무한 일 아닐까? 꽃은 필 때에는 존재의 이유를 얻지만, 꽃 피우기 전후에는 존재의 가치를 얻기 때문이다. 

 

 

첨부파일 : 201060602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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