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텔링

HOME > 알림 > 스토리 텔링 > 스토리 텔링
좋아요 0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프린트

[역사 속 민주주의]권력이 듣기 싫어했던 백성의 소리 - 격쟁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6-05-31

 

“현대 민주주의는 서구 역사발전의 산물이라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세계 최단시간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우리의 저력에는 우리 역사의 산물도 있지 않았을까? 왕권의 권위가 절대적인 조선왕조에도 절대권력을 견제하고 백성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했던 제도와 문화를 살펴보면서 우리 역사 속에 숨겨진 민주주의를 확인해본다.”
조선시대, 군주와 백성의 소통수단


조선 전기 꾸준히 이어오던 신문고 제도는 폭군 연산군 대에 이르러 폐지된다. 신하들에게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요,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다.”라는 경구를 목에 걸고 다니게 했을 만큼 언로(言路)를 닫았던 연산군이니 ‘어린 백성’이 억울하답시고 대궐 앞에서 북을 울려 대는 풍경을 참아 줄 수 없었으리라.

 

후일 영조 대에 이르러 신문고를 부활했지만 잘 운용되지 않았고 영조 임금 51년, 즉 영조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영조는 신문고를 함부로 치지 말라는 명을 내리게 되는데 그 이유가 좀 기구하다. 북을 관리하던 관리들이 뇌물을 받아먹고 북 치는 사람을 통제하는 정황이 포착돼 벌을 내렸는데 이후 하도 많은 사람들이 신문고를 울려대는 바람에 임금부터 “시끄러워 못 살겠다.” 불평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이렇듯 신문고는 절차도 까다로웠고 관리도 어려웠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통제나 조작, 또는 관리의 장난질이 개입되기 쉬웠다.

 

[역사 속 민주주의]권력이 듣기 싫어했던 백성의 소리 - 격쟁 관련이미지1 


<격쟁 / 출처 : KBS 한국의 유산>

 

상언(上言)과 격쟁(擊錚)
조선 시대 백성들이 군주와 직접적으로 통할 수 있는 수단은 또 있었다. 바로 상언(上言)과 격쟁(擊錚)이었다. 상언은 백성이 임금에게 글월을 올린다는 뜻으로 규정에 의하면 한문으로 쓰인 문서의 형태로 당사자가 직접 작성하고 직접 작성 여부를 확인하는 등의 절차를 밟아야 했다.


[역사 속 민주주의]권력이 듣기 싫어했던 백성의 소리 - 격쟁 관련이미지2 


<상소 / 출처 : KBS 한국의 유산>

 

상소(上疏)와 다른 점이라면 상소는 정치적 사회적 전반에 걸친 의견 개진이었다면 상언은 개인적인 억울함이나 민원을 주제로 한다는 점이겠다. 하지만 한문으로 써야 한다는 것은 일반 백성에게는 또 하나의 벽이었다. 상언할 기회조차 없던 백성들은 임금이 거둥하는 길거리에서 꽹과리나 북을 쳐서 임금에게 자신의 사연을 직접 전하게 했으니 이것이 격쟁이다.

 

[역사 속 민주주의]권력이 듣기 싫어했던 백성의 소리 - 격쟁 관련이미지3 


<조선 왕조 실록 / 출처 : 문화유산채널>

 

조선 왕조 실록에는 성종 임금대에서부터 이 단어가 등장하며 ‘속대전’ 편찬 이후 합법화된다. 하지만 격쟁 사례, 즉 백성이 임금의 어가 앞에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는 일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 세조 임금은 만성 피부병에 시달렸다. 그래서 온천 거둥이 잦았는데 하루는 온양 온천으로 행차하던 중 천안 삼거리에서 한 여인의 통곡 소리를 듣는다. 한 여인이 버드나무에 올라가서 울고 있었다. 사람을 보내 사연을 물으니 권세 있는 신하의 일이라 임금에게 직접 말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계유정난 공신의 횡포와 격쟁
결국 세조가 나섰다. 여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에 세조 임금은 그만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여인은 김종서, 황보인 등을 죽이고 권세를 잡았던 계유정난의 공신인 홍윤성의 숙모였다. 그는 조카 홍윤성이 자신의 남편을 죽여 마당에 묻었다고 울부짖었다. 홍윤성이 가난하던 시절 수십 년을 돌보아 주었던 숙부였다. 그 숙부가 청탁을 하러 찾아가자 대가로 땅 스무 마지기를 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분개한 숙부가 호통을 치자 그예 죽여 버리고 마당에 파묻었다는 것이다. 여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세조는 기가 막혔으나 공신 홍성윤을 벌하지는 못하고 애꿎은 하인들을 죽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렇듯 왕에게 직접 나아가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전하는 행동은 조선 초기부터 있었지만 후기로 가면서 더욱 잦아진다. 격쟁의 경우 그 사연 내용에 관계없이 곤장을 치고 그 내용을 보고하도록 했고 사리에 맞지 않는 격쟁인 경우 장 100대에 3천 리 밖 유형에 처한다는 으스스 한 법률에도 불구하고 격쟁은 끊이지 않았다. 그만큼 억울한 사연도 많았고 또 백성들의 의식도 높아졌음을 뜻할 것이다.

 

[역사 속 민주주의]권력이 듣기 싫어했던 백성의 소리 - 격쟁 관련이미지4 


<정조의 격쟁 제도 / 출처 : KBS 한국의 유산>

 

정조, 상언과 격쟁을 소통의 수단으로
이 격쟁 제도를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소통 수단으로 가장 잘 활용했던 임금은 역시 조선 후기 르네상스 시대의 군주 정조였다. 정조 임금은 재위 기간에 총 3천355건의 상언이나 격쟁을 처리하였고 다른 임금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로서 상언과 격쟁의 내용도 다양했다. 격쟁 내용에 가해지던 제한을 철폐하여 하층민들의 호소를 보다 쉽게 만든 것도 정조였다.

 

살곶이 다리, 오늘날 중랑천과 청계천이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다리를 지나던 중 한 열한 살 소년의 격쟁을 듣는다. 소년은 “돈을 사사로이 주조했다는 죄로 유배가 있는 아비의 원통함을 풀어 달라.”라고 호소했고 임금은 “네 행동을 보고 사정을 들으니 불쌍하고 가엾다. 조정에서 마땅히 처분할 것이니 돌아가 기다리라.”라고 화답한다. 거둥을 마치고 돌아온 정조는 즉시 해당 관서에 이를 해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격쟁에는 횟수의 제한도 없어서 같은 사정을 두고 계속 격쟁할 수 있었다.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듣기가 어려운 것
이를 악용한 것이 이안묵이라는 이였다. 그는 절박하지도 않은 산의 소유권 문제를 두고 3년에 일곱 번이나 임금의 행차에 격쟁의 꽹과리를 울렸던 것이다. 이런 물의에도 불구하고 정조 임금은 격쟁을 통한 민의 수렴을 포기하려 들지 않았던 바 이를 통해 흑산도 사람 김이수의 전설 같은 실화가 탄생한다.

 

[역사 속 민주주의]권력이 듣기 싫어했던 백성의 소리 - 격쟁 관련이미지5 

 

<혈의 누>라는 영화가 있었다. 섬사람들 전체가 종이 공물에 시달리던 섬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것이었는데 바로 흑산도가 그랬다. 흑산도는 과거 닥나무가 자란다는 이유로 종이를 상납하는 부역을 감당해야 했는데 사실상 닥나무가 멸종한 뒤에도 그 부담은 사라지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던 것이다. 관가에 진정도 해 보고 감영에도 찾아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흑산도 사람 김이수는 배를 타고 뭍으로 나와 다시 한양으로 상경하여 정조 임금의 행차를 가로막는다.

지금도 배를 타고 두 시간을 달려야 닿는 그 먼 거리를 마다않고 임금에게 호소하겠다는 일념으로 한양 땅을 찾은 김이수는 마침내 흑산 도민의 염원을 이루게 된 것이다. 지금도 김이수의 후손들이 흑산도에 살고 있으며 흑산 도민들은 김이수의 용기를 치하하여 흑산도 주변의 작은 섬을 통째로 김이수의 가문에 주었다고 한다.

 

즉 그 섬의 생산물에 대한 독점권을 준 것이다. 김이수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를 한양 길을 떠나면서 남긴 말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 크다.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듣기가 어려운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은 비단 왕조 국가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음을 자처하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임금과 집권자들은 신문고를 설치하고 격쟁을 허용하면서도 툭하면 꽹과리를 치고 상감마마를 부르짖는 백성들의 아우성에 질색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귀를 열어놓겠다고 장담하면서도 백성들의 입을 막을 궁리가 횡행했다. 하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임금일수록, 그리고 또 나라가 융성하거나 회생하던 무렵일수록 상언과 격쟁이 가장 활발하게 행해졌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바로 그것이 소통의 힘이고 백성들의 권리의식의 성장이고 이를 통해 나라 전체에 생기가 돌았던 것이 아니겠는가.

 

흑산도 사람 김이수의 말처럼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듣기가 어려운 것”이기에. 상언과 격쟁의 이야기는 비단 군주제 국가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본디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권리 주장이 제한되고 ‘알아서 침묵’하거나 공권력이 그 입을 틀어막는 사회라면 어찌 연산군의 시대와 다름이 있겠는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미디어과>

 

정정당당스토리 바로가기(blog.nec.go.kr)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식 블로그 

 

 

첨부파일 : 20160531005.png

공공누리가 부착되지 않은 자료들을 사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담당부서와 사전 협의 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만족도

평가하기

- 담당부서 : 홍보과 / 02-503-27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