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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선거]참꽃과 개꽃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6-05-19

[꽃과 선거]참꽃과 개꽃 관련이미지1 


진달래와 철쭉이 닮은 듯 다르다는 사실을 개나리와 영춘화, 매화와 벚꽃의 차이보다도 훨씬 먼저 인식했던 것 같다. 어느 봄날, 엄마는 <진달래와 철쭉>이라는 제목의 동화책을 사오셨다.

 

당시엔 한 학교 혹은 한 동네에 꼭 한두 명씩은 진달래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었기에, 나 같은 소녀들의 풋풋한 이야기라 예상하고는 냉큼 앉았다.

 

그러나 ‘진달래와 철쭉’은 아내를 여의고 산골에서 살아가는 희성이 영감의 두 아들 이름이었다.

 

마음씨 착한 희성이 영감은 욕심 많은 연성이 영감의 음모 때문에 두 아들을 잃지만,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두 아들이 천신만고 끝에 임금님의 사위가 되어 아버지와 재회한다는 이야기. 말하자면 그림 형제 스타일의 골자에 권선징악의 주제로 살을 붙인 것이다.

 

엄마는 곰과 사슴, 토끼를 부하로 맞이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붉은 여우를 물리치는 두 형제의 무용담을 황당해하는 내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진달래 때문에 철쭉이 구박 받지는 않잖아. 진달래와 철쭉, 둘 다 얼마나 예쁘니?”

 

 

[꽃과 선거]참꽃과 개꽃 관련이미지 2 

 

 

엄마는 동네 뒷산을 산책하다가도 진달래와 철쭉의 차이점을 설명해주셨다. 진달래의 분홍 꽃잎은 하늘하늘하고 얇으며 꽃 속에 옅은 반점이 있고, 꽃받침을 만져도 끈적거림이 없었다.

 

 반면 철쭉의 꽃잎은 진달래보다 두텁고, 연분홍색이며, 무려 5미터나 되는 것도 있었고, 꽃받침이 끈적거렸다. 그러나 들을 때뿐,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진달래와 철쭉을 함께 놓고 비교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진달래와 철쭉의 가장 큰 차이점은 꽃 피는 시기다. 진달래는 4월 초에서 중순, 그러니까 아직은 다소 쌀쌀한 기운이 감돌 때가 한창인데, 꽃을 먼저 피운 후 꽃이 지면서 잎이 나온다. 그러나 철쭉은 조금 후인 완연한 봄에 꽃과 잎이 함께 핀다.

 

간발의 차로 개화 시기가 다른데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찾아볼 수도 없었기에 내 머리 속에서 진달래와 철쭉은 늘 같은 꽃으로 남았다.

 

[꽃과 선거]참꽃과 개꽃 관련이미지3 

 

 

그런 내 눈에도 왠지 진달래가 더 고와 보였다. 진달래는 어느 여인의 우아한 한복 치마 같았다면, 철쭉은 엄마가 막 입어서 물 빠지고 색 바랜 치마 같았다. 덕분에 진달래와 철쭉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모녀의 의견차이는 홍해처럼 갈라졌다. 엄마는 진달래보다 철쭉이 더 예쁘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취향을 이해하기란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매년 친구들과 함께 소백산, 봉화산, 제암산, 황매산, 바래봉 등 이른바 오늘날 철쭉 5산으로 알려진 곳들을 다니시며 꽃분홍색 신을 신은 것 같은 느낌이라는 엄마에게, 고작 꽃신 신은 느낌 때문에 그 먼 곳을 찾아 다니나 의아하다고도 했다.

 

진달래야말로 수백, 수 천년 전부터 화전으로도 먹고 두견주로도 먹는 귀한 꽃인 반면, 철쭉은 특유의 독성 때문에 먹지도 못하는 꽃. 그래서 진달래는 참꽃, 철쭉은 개꽃이라 불리는 거라는, 어디에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로 반박하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엄마가 바로 그 때문에 진달래보다 철쭉에 더 마음이 갔던 걸 몰랐다.

 

 

 

 

매년 여름마다 송충이를 한 깡통 가득 채워 학교나 동사무소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던 시절, 엄마는 시골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봄부터 엄마의 분주한 일상은 시작됐다.

 

그 몸에 좋다는 진달래 꽃을 따러 온 동네 산을 쏘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진달래를 찾아 다니는 시간 자체가 고단했던 건 아니었다. 엄마는 진학할 때마다 굉장히 부지런하고 굉장히 보수적이었던 외할아버지와 싸우다시피 해야 했다. 공부는 장남만 시키면 된다는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은 번번이 엄마를 좌절시켰다.

 

늘 오빠들의 존재에 치였던 엄마는 부엌에서 진달래 화전을 부치면서 차라리 개꽃인 철쭉이 자신과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참꽃이라 부르며 아끼고 귀하게 쓰는 진달래만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쓸모 없어서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철쭉도 이 세상에 피어나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은 엄마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고대 설화 중에서도 진달래에 관한 것이 있다. 연달산이라는 곳에서 천사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

 

‘여기는 천사나라 인간은 못 오는데 / 연달산은 하늘산 인간은 못 올라오는 곳 / 향기 좋고 빛 고흔 이 꽃, 인간은 먹지 못하는 것 / 향기 좋고 빛 고흔 이 꽃, 무엇이라 이름 질까 / 연달산에 피는 꽃이니 연달래꽃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인간의 탐욕으로 죽임을 당한 천사들의 영혼이 분홍 꽃에 깃들었고, 그 꽃을 먹는 사람은 죽고 말았다.

 

죽어가던 인간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인 친구는 나를 죽이고야 마는구나. 이 산에 새로 피는 꽃은 모두 천사가 죽은 넋이오니 먹으면 나처럼 죽소이다. 내 장사를 치른 뒤에 좋은 날을 가려서 꽃나무를 끊으시오. 그러면 다시 순이 돋더라도 늦게 피게 될 것이니 늦게 피는 꽃을 먹지 말라고 일러 주십시오.” 설화 속에서도, 엄마의 일상에서도 철쭉은 한을 품은 진달래였다.

 

[꽃과 선거]참꽃과 개꽃 관련이미지4 

 

 

이제 엄마는 더 이상 철쭉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던 마음 여린 소녀가 아니다. 결혼하여 딸아이를 낳았고, 그 딸이 커서 다시 딸을 낳았다. 그 긴 세월 동안 지천에 널려 있던 진달래는 시골에서조차도 보기 힘든 꽃이 되었다. 모 호텔 입구에나 가야 품위 있게 잘 다듬어진 진달래를 볼 수 있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철쭉 구경은 더 힘들어졌다.

 

 대신 요즘에는 키 낮은 철쭉인 연상홍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아파트 단지와 관공서의 정원을 점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이 심어져 있다. 딸아이의 아이를 키우느라 몇 년 째 철쭉 구경을 포기해온 엄마는 손녀와 연상홍을 구경하며 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의 엄마는 내게 그랬듯, 나의 딸에게 진달래와 철쭉, 그리고 연상홍의 차이를 설명하곤 한다. 이제 여덟 살이 된 딸아이가 이 꽃들을 구분할 리 만무하지만, 엄마의 봄은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진달래와 철쭉의 자리를 대신하여 화려하게 흐드러진 연상홍처럼, 정치는 우리 일상의 도처에 깔려 있다. 이번 총선 때 투표장에 따라온 딸아이는 1번, 2번, 3번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 알려달라고 했다. 어린 나의 눈에 봄꽃이 다 비슷비슷해 보였듯이, 딸아이의 눈에도 정치라는 세계는 똑같이 거대한 덩어리처럼 느껴질 것이다.

 

나는 그 시절의 엄마가 내게 진달래와 참꽃의 차이를 알려주었듯, 딸에게 이들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주었다. 차이를 안다는 것, 그리고 설사 주관적일지라도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지 판단할 줄 아는 것은 어쩌면 행동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글 / 정수안(컬럼니스트

[출처] [꽃과 선거]참꽃과 개꽃 |작성자 정정당당스토리

 

 

 

첨부파일 : fl2016051800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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