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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톡]우리는 올바르기를 거부합니다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6-05-16

 

 

사회적으로 ‘착하지 않을 것’이 요구되는 날도 과연 올까. 얼핏 허황된 이 바람은 사실 머지않은 현실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국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 대선에서 공화당 유력 후보로 꼽히는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동화 속에서 응당한 듯 보였던 ‘착한 어린이 환상’은 현실의 많은 이들에게 깨진 지 오래다. ‘착하게 사세요’, ‘바르게 사세요’ 따위의 말들은 이제 권유받지도, 권유하지도 않게 되었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나쁜 게 좋다. 착하면 손해 보기 십상이고, 같이 지내기에도 답답하다. 하지만 이런 속내를 남들 앞에 터놓기는 부담스럽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내게 공감할 것을 믿지만, 아직 사회는 겉으로 착한 척이라도 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나. 속마음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관련이미지1 

 

 

<도널드 트럼프 / 출처 : 나무위키>

 


현재 미 대선과 관련해 올라오는 뉴스들은 거의 이 중 하나이다. 경선에서 후보자들의 희비, 트럼프의 위험한 공약들, 트럼프의 높은 지지율, 반 트럼프 움직임.

 

 

트럼프는 이번 미 대선 관련 기사에서 압도적인 지분율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철저히 미국만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트럼프와 관련된 소식들에 우리나라 대다수 사람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기보다 하나의 해프닝쯤으로 치부하며 웃어넘기는 반응이다. 그런데 높은 트럼프 지지율은 명백한 미국의 현실이다. 만에 하나 트럼프가 당선되는 경우는 물론, 트럼프가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트럼프의 발언들은 결코 해프닝으로만 치부되어선 안 된다.

 

동화 속에서 응당한 듯 보였던 ‘착한 어린이 환상’은 현실의 많은 이들에게 깨진 지 오래다. ‘착하게 사세요’, ‘바르게 사세요’ 따위의 말들은 이제 권유받지도, 권유하지도 않게 되었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나쁜 게 좋다. 착하면 손해 보기 십상이고, 같이 지내기에도 답답하다. 하지만 이런 속내를 남들 앞에 터놓기는 부담스럽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내게 공감할 것을 믿지만, 아직 사회는 겉으로 착한 척이라도 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나. 속마음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관련이미지2 

 

 

<힐러리와 더불어 강력한 대선 후보로 꼽히는 트럼프 / 출처 : Focus news>

 

사실 트럼프의 높은 지지율은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미국 사회 현실의 시의 적절한 반영이다. 트럼프의 발언은 기존 미국 정치에 미국 국민이 가지는 반감을 이용한 ‘순전히 정치적인 전략’이다. 미국 국민이 가지는 정치적 반감이 무엇에 기인하고 있는지를 알면 이해하기 더 수월할 것이다.

 

전쟁 피로감에 지친 미국인들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경기 침체로부터 미국 역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기존의 미국 정치가 미국의 경제적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제력을 악화시킨 잘못된 정치로 꼽히는 것이 바로 ‘미국의 타국 개입’이다.

 

 

동화 속에서 응당한 듯 보였던 ‘착한 어린이 환상’은 현실의 많은 이들에게 깨진 지 오래다. ‘착하게 사세요’, ‘바르게 사세요’ 따위의 말들은 이제 권유받지도, 권유하지도 않게 되었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나쁜 게 좋다. 착하면 손해 보기 십상이고, 같이 지내기에도 답답하다. 하지만 이런 속내를 남들 앞에 터놓기는 부담스럽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내게 공감할 것을 믿지만, 아직 사회는 겉으로 착한 척이라도 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나. 속마음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관련이미지3 


 

출처 :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미국은 소련의 붕괴 이후 세계 단일 패권국가로 떠오르면서 ‘지역방위전략’을 고수해왔다. ‘지역방위전략’은 한 지역에서 특정한 국가가 패권적 힘을 가지지 못하도록 지역 내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정책이다. 미국은 이 ‘지역방위전략’을 통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위협적인 국가의 출현을 방지해왔다.

 

한편 민주주의적 질서가 확립되지 못한 독재국가들에도 미국은 개입을 해왔는데 이는 ‘존재론적 소명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분석된다. 한마디로 미국이 아니면 세계의 질서와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국가가 없다는 믿음이 미국 내 정치인들 사이에 형성되어있는 것이다. 패권 유지를 위함이라고 여겨지는 ‘지역방위전략’ 역시도 그 근간에는 미국이 패권을 잡는 것이 지구촌의 평화를 위해서도 좋은 것이라는 소명의식이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역방위전략’과 ‘존재론적 소명의식’은 미국의 국제적 지위 유지나 세계적 평화 기여 등 긍정적인 의도로 시작되었지만 미국에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안기며 부정적인 작용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미국 국민들은 ‘미국의 타국 개입’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당장의 경제적 현실이 좋지 못한 미국 국민들에게 패권 유지니 세계 평화니 하는 명분은 그리 공감 가는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

미국 정치 반감 유발의 또 다른 원인으로 ‘정치적 올바름’이 있다. ‘정치적 올바름’은 성차별이나 인종 차별적인 언어와 소수자나 약자에게 불쾌감을 주는 표현을 바로잡으려는 사회 운동을 뜻하는 말이다. 1980년대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작되어 현재는 미국 정치권에 하나의 도덕적 규범으로써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가 차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아직 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한 미국인 대상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8%가 ‘정치적 올바름’이 심각한 문제라고 답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은 필 밸런타인의 ‘보수주의자의 핸드북’이란 책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밸런타인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란 이유로 그 어떤 다른 목소리도 관용하지 않는 ‘정치적 올바름’이야말로 진보 세력의 파시즘”이라고 주장했다. 폭력을 휘두르고 도망가는 흑인을 쫓아가면서 ‘검둥이! 거기 서!’라고 말하면 그 흑인의 폭력보다 ‘검둥이’라는 단어가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이 정상이냐는 것이다. 이는 보수주의자만의 입장이 아니다. 일부 진보적 인사들조차도 “정치적 올바름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라며 정치적 올바름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의 망언들

트럼프의 망언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세를 치렀던 발언은 물론 ‘한국 안보 무임승차론’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원조로 국가 안보를 지키고 있는데 본인의 당선 시 우리나라에 막대한 안보비용을 물게 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고립주의’를 외치며 우리나라 이외에도 타국에 대한 개입을 철폐할 것을 공약했는데 이는 앞서 설명한 미국의 ‘지역방위전략’과 ‘존재론적 소명의식’에 의거한 미국의 타국 개입에 미국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피로감을 의식한 발언이다.

 

또한 트럼프는 계속해서 본인이 ‘정치적 올바름’을 거부하는 후보임을 강조해왔었다. 지난 해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직후부터 ‘정치적 올바름과의 전쟁’은 그가 내세운 핵심 선거 전략이었다. 트럼프는 “정치적 올바름이 미국을 망치고 있다. 워싱턴 정치인들이 그것 때문에 문제의 핵심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낙태한 여성, 무슬림, 불법 이민자 등의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해 그가 내놓은 답안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실제로 영국 가디언 지는 “트럼프 지지자 상당수는 ‘정치적 올바름’의 사회적 강요에 질린 사람들”이라고 분석했다. 기사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한 유권자는 “상대의 종교가 다를 수 있으니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할 때도 신경 써야 하고, 상대가 성적 소수자일 가능성을 생각해 ‘그’나 ‘그녀’란 호칭을 쓰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라며 ‘정치적 올바름’을 권장하는 사회의 불편함을 강조했다.

 

동화 속에서 응당한 듯 보였던 ‘착한 어린이 환상’은 현실의 많은 이들에게 깨진 지 오래다. ‘착하게 사세요’, ‘바르게 사세요’ 따위의 말들은 이제 권유받지도, 권유하지도 않게 되었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나쁜 게 좋다. 착하면 손해 보기 십상이고, 같이 지내기에도 답답하다. 하지만 이런 속내를 남들 앞에 터놓기는 부담스럽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내게 공감할 것을 믿지만, 아직 사회는 겉으로 착한 척이라도 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나. 속마음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관련이미지4 

 

 

<3월 12일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의 한 유세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지지자와 반대자가 서로 멱살을 잡고 있다 / 출처 : AP 연합뉴스>

 

트럼프의 ‘고립주의 정책’과 ‘정치적 올바름 거부’는 결국 착하고 싶지 않은 미국인들의 대변인 셈이다. 그리고 트럼프의 높은 지지율은 착하고 싶지 않은 미국인이 결코 미국 사회 내에 적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착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을 마냥 비난하고 싶진 않다. 글의 시작에서 밝혔듯 나 역시 착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전 세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이 비단 아직은 ‘착한 척’이라도 해야 하는 위선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일까.

 

폭력을 휘두르고 도망치는 흑인을 향해 ‘검둥이, 거기 서!’라고 외치는데, 차별적인 용어가 사회적 문제인가와 흑인의 폭력과 검둥이라는 단어 선택 중 무엇이 더 중한 사회 문제로 취급되어야 하는가는 별개의 논점이다. 폭력보다 ‘검둥이’라는 단어 사용이 더한 문제로 여겨지는 사회라는 것이 검둥이라는 차별적 단어가 용인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는 아니다. 차별적인 단어 사용은 여전히 그 자체로서 문제이다.

 

 

동화 속에서 응당한 듯 보였던 ‘착한 어린이 환상’은 현실의 많은 이들에게 깨진 지 오래다. ‘착하게 사세요’, ‘바르게 사세요’ 따위의 말들은 이제 권유받지도, 권유하지도 않게 되었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나쁜 게 좋다. 착하면 손해 보기 십상이고, 같이 지내기에도 답답하다. 하지만 이런 속내를 남들 앞에 터놓기는 부담스럽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내게 공감할 것을 믿지만, 아직 사회는 겉으로 착한 척이라도 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나. 속마음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관련이미지5 

 

<2015년 4월부터 조사된 주요 후보들의 여론조사 지지율 평균 / 출처 : 나무위키>

 


또한 “착하기를 요구하는 사회는 진보적 파시즘”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인종, 성별, 종교 등에 따른 차별은 그들이 비판하고 있는 파시즘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라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 올바름’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모든 것에 예민하게 굴고 다른 사람을 피로하게 만들어 사회적 효율성을 저해시킨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적당한 ‘정치적 올바름’은 권장될 만하며, 역차별과 소수자를 위해 외면당하는 자신의 상처나 신념을 이유로 굳이 폭력적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은 크게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예민한 사람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믿지만 이 예민한 이들이 보편적인 사람들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역시도 동의한다. 결국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나 착할 것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나 필요한 건 ‘관용의 정신’이다.

 

동화 속에서 응당한 듯 보였던 ‘착한 어린이 환상’은 현실의 많은 이들에게 깨진 지 오래다. ‘착하게 사세요’, ‘바르게 사세요’ 따위의 말들은 이제 권유받지도, 권유하지도 않게 되었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나쁜 게 좋다. 착하면 손해 보기 십상이고, 같이 지내기에도 답답하다. 하지만 이런 속내를 남들 앞에 터놓기는 부담스럽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내게 공감할 것을 믿지만, 아직 사회는 겉으로 착한 척이라도 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나. 속마음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관련이미지6 
 

 


‘정치적 올바름’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함으로써 다양성을 확보해 사회의 획일성을 견제하자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에 반발하는 이들은 ‘정치적 올바름의 움직임이 소수자나 약자를 차별하지 말 것을 획일화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정치적 올바름에 반발하는 사람들에게 서로는 ‘파시즘’이다. 무엇을 더 파시즘에 가깝다고 규정할 수 있느냐는 차치하고, 각자는 자신의 주장이 어떤 모순점을 안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봐야 할 필요성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동화 속에서 응당한 듯 보였던 ‘착한 어린이 환상’은 현실의 많은 이들에게 깨진 지 오래다. ‘착하게 사세요’, ‘바르게 사세요’ 따위의 말들은 이제 권유받지도, 권유하지도 않게 되었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나쁜 게 좋다. 착하면 손해 보기 십상이고, 같이 지내기에도 답답하다. 하지만 이런 속내를 남들 앞에 터놓기는 부담스럽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내게 공감할 것을 믿지만, 아직 사회는 겉으로 착한 척이라도 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나. 속마음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관련이미지8 

 

[출처] 우리는 올바르기를 거부합니다|작성자 정정당당스토리

 

 

 

첨부파일 : we201605180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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