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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유권자의 날과 시민의식의 각성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6-05-09

유권자의 날과 시민의식의 각성

 

유권자의 날과 시민의식의 각성 1 

 

주어진 투표권과 유권자의 날


우리에겐 다행이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일이 있다. 전 국민에게 투표권이 그냥 주어졌다는 점이다. 투표권을 얻어내기 위해 희생을 치르지 않았어도 됐다는 점에선 다행한 일이지만, 너무 쉽게 주어졌기 때문에 그 소중함에 대한 자각이 무뎌졌다는 점에선 아쉬운 일이다. 유권자의 날을 아는 사람이 드문 것도 이런 배경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5월은 보통 가정의 달이라고들 알고 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이 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에 맞춘 스승의 날도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5월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사이엔 유권자의 날이 있다, 만약 이날이 수많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얻어낸 투표권을 기념하는 날이었다면 널리 기억됐을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권자의 날은 별로 중요한 날로 여겨지지 않고, 투표권 또한 그렇게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유권자의 날과 시민의식의 각성2 


 

어차피 지나간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한 드라마틱한 역사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역사가 있다면야 시민적 각성이 크게 일어났겠지만 그런 게 없는 상태에서 투표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공백을 교육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선거와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 지속적으로 교육함으로써 투표권의 의미를 무겁게 되새기는 시민정신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시민적 교육의 계기가 되는 날이 바로 유권자의 날이라고 할 수 있다. 1948년 5월 10일에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라는 민주적 선거제도를 도입한 최초의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를 통해 제헌의회가 구성됐고, 헌법제정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공직선거법은 최초의 총선일인 5월 10일을 유권자의 날로 정했다. 이날을 크게 기념해서, 시민혁명의 공백으로 인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유권자 의식을 함양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유권자의 날과 시민의식의 각성3 

 

 

피의 투표권
서양에선 프랑스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격변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가 시작됐다. 그 이후에도 모든 성인 국민이 투표권을 갖게 되기까지는 기나긴 희생의 역사가 필요했다. 미국에선 1965년에 참정권을 요구하는 흑인들의 행진을 경찰이 무자비하게 진압한 ‘피의 일요일’ 사건이 있었다. 프랑스에선 여성의 투표권을 요구한 사람이 단두대에서 처형되기도 했고, 영국에선 여왕이 관람하는 경마경기장에 여성투표권을 요구하며 뛰어든 사람이 사망하기도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에겐 이런 역사가 없기 때문에, 투표권이 마치 생래적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산소처럼 당연한 것으로 인식돼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엔 고무신 정도의 선물에 투표권을 팔아넘기기도 했다. 선물을 준 사람에게 아무 생각 없이 투표했던 것이다. 온갖 명목의 모임을 통해 향응과 현금 봉투가 제공되기도 했다. 한국 유권자의 시민의식이 성숙하지 못했던 시절의 에피소드다.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던 시절을 지나 직선제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그나마 서구 시민혁명과 비슷한 시민적 열기가 분출하기는 했다. 이때 거의 한풀이 수준의 정치적 관심이 나타나 주요 대권 주자의 유세장엔 백만여 명의 청중이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관심은 이내 사라졌다. 지지하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고 지지정당이 의석을 차지하면 금방이라도 세상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금방 무기력해졌다.

특히 젊은 사람들의 좌절이 컸다. 투표하든 안 하든 어차피 권력자는 그 나물에 그 밥이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를 갖게 됐다. 그리하여 투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급기야 선거일을 단순한 휴일 정도로만 여기게 됐다. 점점 하락하는 젊은이들의 투표율로 인해 우리 민주주의가 껍데기만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투표를 안 하는 것 못지않게 ‘묻지마’로 투표하는 지역주의도 문제였다. 지역당에서 공천만 하면 허수아비라도 당선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묻지마 투표나 투표 포기나 오십보백보다. 투표를 안 하는 유권자도, 묻지마로 투표하는 유권자도 무시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유권자의 날은 이런 시민의식의 풍경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유권자의 날과 시민의식의 각성4 

 

귀찮은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정말 귀찮은 제도다. 민주주의는 시민을 그냥 두지 않는다. 시민은 시에서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공화국의 주권과 참정권을 가진 사람이 시민이다. 과거 왕정 시절엔 왕에게 주권과 참정권이 있었는데, 이젠 모든 국민이 주권과 참정권을 나눠 가진 시민이 되었다. 바로 그렇게 국민을 시민으로 만든 정체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은 헌법에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했다.

이 얘기는 이 나라가 우리에게 주권과 참정권의 행사를 요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귀찮다. 주인으로서 이 나라를 항상 염려해야 하고, 참정권을 통해 국가운영에 참여해야 한다. 그것이 너무나 어려우므로 국가를 대신 운영할 사람을 뽑는 선에서 타협한 것이 대의민주주의다.

국가를 직접 운영할 정도로까진 고민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를 대신해 국가를 운영할 사람을 뽑는 데에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거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투표를 안 해도, 묻지마로 투표해서도 안 된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판단해서 참여해야 한다. 너무 조급하게 기대하고 금방 실망, 포기해서도 안 된다. 하루아침에 지상낙원이 건설되는 일은 없다. 선거는 평생 참여하는 것이고, 좋은 세상은 아주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시민에게 주어진 의무다. 과거 아리스토텔레스는 직접민주주의체제에서 시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선 시민에게 생업이 없어야 한다고까지 했었다. 생업에 종사하면 공화국의 운영에 참여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생업 포기까지 요구하진 않는다. 그저 평소에 이루어지는 약간의 관심과 선거 참여 정도를 요구할 뿐이다.

이조차 하지 않는다면 공화국이 성립할 수 없다. 국민 따로 정치 따로인 가짜 공화국, 껍데기 공화국으로 전락할 것이다. 정치가 몇몇 정치 귀족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작동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정치가 더럽다고 참정권을 포기하면 정치가 더욱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든다. 그러므로 항상 정치에 대해 고민하고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유권자의 의무이고 동시에 권리다. 유권자의 날은 바로 그러한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유권자의 날과 시민의식의 각성5 

 

이번 총선엔 그동안 그렇게 하락하던 청년층 투표율이 다행히 살짝 올랐다. 지역주의의 철옹성도 조금은 무너지는 징후를 보였다. 이것을 출발 삼아 앞으로 더욱 큰 유권자의 각성이 나타나야 한다. 유권자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참여할 때, 바로 그때가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국민을 무서워하는 날이 될 것이다. 유권자가 유권자의 권리를 스스로 귀하게 여겨야 감히 누구도 그것을 우습게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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