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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정치] 정치의 음식, 칼국수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6-05-02

 

 

 

[맛있는 정치] 정치의 음식, 칼국수

 

 

한국 정치판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음식을 들라 하면, 칼국수만 한 것이 없다. 특히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김영삼 대통령은 ‘칼국수 정치’를 하였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어떤 특정 음식에 정치적 맥락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시대적 필요로 음식은 정치적 그 무엇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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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만 하더라도,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만 하더라도 칼국수는 귀한 음식이었다. 밀이 귀하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귀하였는지 ‘진가루’라 불렀다. 양반가 중에서도 방귀깨나 뀌어야, 그것도 손님이 왔을 때나 칼국수를 밀었다.

 

한국전쟁 이후 밀가루 사정이 확 달라졌다. 미국의 잉여 밀가루가 값싸게 주어졌다. 그렇다고 당장에 칼국수가 서민의 음식으로 번지지는 못하였다. 여유가 없었다.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이 땅의 사람들은 밀가루로 반죽하고 홍두깨로 반대기를 만든 후에 접어서 칼로 썰어야 하는 정도의 여유도 없었다. 반죽하여 손으로 대충 뜯어서 국물의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수제비이다.

 

‘국민 여동생’으로 살았던 최진실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수제비에 대한 이 정서를 극적으로 보여준 인물이었다. 최진실은 1968년, 가난의 시대 막바지에 태어났다. 그는 배우로 유명해졌지만, 그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고추장 넣고 끓였던 수제비 이야기를 수시로 했다. 최진실 연배이거나 그보다 이르게 태어난 사람 중에 고추장수제비 안 먹어본 사람은 드물었다. 고추장수제비를 말하는 최진실에게 그 시절의 누이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최진실이 ‘국민 여동생’으로 각인되는 데에는 이 수제비가 한몫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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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실이 태어난 다음 해인 1969년 박정희 정부는 혼분식 장려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분식의 날로 정해 강제하였다. 쌀을 아끼자는 절미운동은 일제강점기부터 있는 정책이었지만, 박정희 정부는 분식의 날을 정하면서 그 강도를 올린 것이다. 전국의 모든 식당에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분식을 팔게 했다. 가정에서도 이날에는 분식을 먹도록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학생들이 싸가는 도시락도 혼분식을 하였는지 점검하였다.

 

이때 박정희가 내민 혼분식 대표 음식이 칼국수였다. 당시 언론은 박정희가 육영수 여사가 해주는 칼국수를 먹는다고 수시로 보도를 하였다. 이에 따라 신문에는 칼국수 조리법이 때때로 실렸으며, 식품영양학자들이 나서서 칼국수는 건강에 좋고 전통적이며 맛있는 음식이라는 관념을 국민의 머리에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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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많은 한국인은 최진실처럼 수제비를 먹고 있었을 것인데, 박정희가 혼분식의 대표 음식으로 수제비를 버리고 칼국수를 선택한 것은 매우 정치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미국에서 들여온 값싼 남은 농산물로 조리한 음식일망정 대통령의 음식이니 근본도 없어 보이고 때깔도 나지 않는 수제비를 먹는다는 것은 권위가 서지 않는 일이라 판단하였을 것이다. 그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로 밀고 칼질을 하면 때깔이 그런대로 살아 '요리'처럼 보인다는 데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는 느낌이 왔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칼국수는 정치의 음식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한국 칼국수의 상징처럼 거론되는, 서울의 명동과 성북동에 있는 두 칼국숫집은 분식의 날이 제정되던 1969년에 개업을 하였다. 이 두 식당은 조선 양반가의 전통이 그 칼국수에 담겨 있는 듯이 소문을 냈다. 성북동은 경상도식 건진국수 전통을 따랐다 했고, 명동은 충청도식 제물국수 전통이라 주장하였다. 이 두 칼국숫집은 개업하자마자 정치인의 단골 식당이 되었다. 당시는 여야 관계없이 분식의 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는데, 명색이 정치인이니 서민과는 그 격이 다른, 그러니까 전통이라 할 만한 ‘국물’이라도 담겨 있을 법한 칼국수를 먹으려 했다. 김영삼의 칼국수 정치도 그 맥락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서민인 듯도 싶고 서민이 아닌 듯도 싶게 칼국수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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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를 먹는 김영삼 대통령 / 출처 : SBS>

 

 

1970년대 칼국수는 여염집 여자이면 마땅히 하여야 하는 전통음식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당시 혼기를 앞두었거나 신혼에 있는 처자에게 “어떤 음식을 잘하세요?” 하고 물으면 수줍게 “칼국수”라고 대답하곤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이때 서민의 칼국수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소형 칼국수 기계가 등장하고 멸치, 북어 등 값싼 육수 재료가 공급되면서 자장면 가격에 맞서는 칼국수가 번져나갈 수 있었다. 분식집 칼국수, 재래시장 칼국수는 1980년대에 들어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다.

 

현재 한국의 가정집에서는 칼국수를 해먹지 않는다. 그 번잡한 일을 감당할 것이면 차라리 모양이라도 나게 파스타를 해먹으려 할 것이다. 칼국수는 외식 아이템일 뿐이다. 외식시장에서의 칼국수는 크게 두 종류로 존재한다. 고급인 전통의 칼국수와 저렴한 서민의 칼국수. 물론 가격 차이만큼 국물이며 재료의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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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시장에서 음식을 먹으며 서민 코스프레를 한다. 그때 국밥이나 어묵, 붕어빵, 잔치국수까지는 흔히 먹는데 시장 칼국수는 잘 먹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 서민인 듯도 하고 서민이 아닌 듯하게 보여줄 정치의 음식으로 칼국수를 남겨두고 싶은 것이 아닌가도 싶다. 그래서인지 고급인 전통의 칼국수를 내는 식당에는 여전히 그 오랜 정치인들이 들락거린다.

“왕이나 거지나 하루 세끼 먹는 것은 같다.” 너나없이 없이 살 때는 빈곤한 밥상 앞에서 스스로 위무하기 위해 이런 말을 곧잘 했다. 시대가 바뀌었다. 같은 음식이라도 그 질에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다 안다. “우리 모두 칼국수를 먹지 않나요?” 하는 정도로는 ‘왕’과 ‘거지’를 동질화할 수 없다. 정치는 나누기이고, 정치인이 얼마나 평등하게 잘 나누는지 시민은 늘 감시하고 확인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 귀찮아도, 민주 공화정은 원래 그런 것이다.

 

                                                                                    글 :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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