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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선거] 튤립이 준 교훈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6-05-02

 

 

 

[꽃과 선거] 튤립이 준 교훈

 

 

어린 시절 내게 튤립은 일종의 판타지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튤립이 늘 피어 있었던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지금이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 없다)’의 의미를 뼈저리게 알아버렸지만, 그땐 튤립이 사계절 내내 피는 꽃인 줄 알았다. ‘튤립이 가득한 집’에서는 우리 집에는 없는 향긋한 꽃향기도 나는 듯했다. 30년 전만 해도 튤립은 꽤 귀한, 이국적인 꽃이었다. 당시 ‘국민학생’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오던(실은 실화가 아니라 픽션이다), 밤새 온몸으로 둑을 막은 용감한 소년이 살았다는 바로 그 네덜란드에서만 피는 줄로 알았던 꽃, 풍차 아래 양탄자처럼 펼쳐진 튤립을 매일 보고 살다니! 튤립 때문에 그 친구가 좋았던 것 같다. 어느 날, 튤립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나를 본 친구가 말했다. “냄새 안 날 걸 아빠가 네덜란드 출장 갔다가 사 오신 가짜 꽃이야. 네덜란드에서 튤립이 태어났거든.” 사시사철 붉은 꽃에 대한 판타지도, 친구 녀석에 대한 판타지도 그 날 모두 산산조각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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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초등학생들도 튤립이 네덜란드의 상징이라는 건 다 안다. 설사 유명한 문구를 들어보지 못했다 해도 말이다. 'It's spring again, I'll bring again, tulips from Amsterdam.(봄이 다시 온다, 나는 다시 암스테르담에서 튤립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튤립의 원산지는 암스테르담이 아니라 터키와 중앙아시아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튤립을 처음 만났고, 그 때 들여온 튤립을 궁전에 심었다. 튤립의 태생적인 생김새와 느낌, 특유의 우아함과 품위는 인공적일지언정 왕족과 귀족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옷의 문양이나 그림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높은 분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더욱 아름다운 튤립을 찾아야 했던 이들은 적극적으로 품종을 개발했고, 이런 움직임은 16세기 이후 유럽 각지에 튤립이 전해지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그중에서도 튤립에 가장 열광적으로 반응한 곳이 바로 네덜란드였다. 17세기 즈음, 네덜란드는 최고의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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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세계튤립축제 / 출처 : http://www.ffestival.co.kr >

 

 

사실 친구네 집에서의 ‘사건’ 이후 튤립은 내 기억에서 지워졌다. 매년 봄이면 튤립 축제가 열리는 놀이동산에서 데이트 한 번 한 적 없었고, 태안 튤립축제가 미국의 튤립 타임 페스티벌, 캐나다의 튤립 축제, 일본의 도나미 튤립 축제, 인도 스리가나 튤립 축제 등과 함께 세계 5대 튤립 축제로 선정되었다는 뉴스를 봐도 시큰둥했다. 그런 내가 튤립에 대해 다시 골똘히 생각하게 된 건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젊은 아티스트 남화연의 작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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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에 초청된 남화연의 퍼포먼스 '욕망의 식물학' / 출처 : www.art1.com >

 

 

‘욕망의 식물학’이라는 제목의 8분짜리 영상 작품에서는 수많은 튤립의 이미지가 쏟아졌다. 들판 가득 피어 바람에 흔들리는 튤립, 17세기 튤립 카탈로그, 튤립을 가꾸는 중세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 튤립을 맴도는 벌의 움직임 이미지 등이 무작위적으로 나오는 중간중간, 두 명의 무용수가 벌의 춤을 따라 한 듯한 율동 혹은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러나 이 영상을 더욱 궁금하게 만드는 건 2009년 주식시장 폭락을 중계하는 누군가의 급박한 목소리였다. 튤립과 (시장) 가격 폭락의 연관관계라, 어딘가 낯익었다. 바로 역사상 최초의 거품 경제 현상으로 기록된 ‘튤립 파동(Tulipomani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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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페이 아우구스투스 / 출처 : www.inmygarden.nu >

 

 

17세기의 네덜란드인들은 튤립에 광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튤립을 사재기하기까지 했다. 특히 이들을 사로잡은 튤립은 보라색과 흰색 줄무늬 꽃을 가진 센페이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였다. ‘영원한 황제’라는 이름의 튤립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고, 튤립 구근의 가격은 나날이 치솟았다. 1630년대 중반에는 튤립 뿌리 하나가 8만 7000유로, 약 1억 6천만 원까지 치솟았다. 그 과정에서 고급 품종 구근 하나로 일확천금을 손에 쥐는 자들도 속출했다. 이 소문에 장인이고 농민이고 할 것 없이 모두 '튤립 구근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술집에서 허술한 계약서를 주고받았고, 서민들은 튤립 몇 뿌리를 살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가축을 팔았다.

 

악재는 이 튤립을 둘러싼 ‘쩐의 전쟁’을 시작한 부유한 식물 애호가들이 정작 이 전쟁에서 빠져버리며 시작됐다. 너도나도 집착하는 꽃은 별 매력이 없었던 것이다. 실질적인 수요가 급감하면서 시장은 텅 비어 버렸다. 가격이 폭락한 게 아니라 튤립을 찾는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서민들 사이에서 오가던 계약서는 휴지조각이 되었고, 돈을 못 받거나 못 준 자들이 수천 명에 이르렀다. 네덜란드 전역은 역병이라도 돈 듯 카오스 상태가 되었다. 튤립이 빚은 참극은 ‘계약서 일괄 무효’라는 극단적인 방침으로 일단락되었다. 파산자 아니면 벼락부자만 남긴 채, 그리고 당시 ‘경제대국’의 타이틀을 영국에 넘겨주면서 말이다. ‘튤립 파동’은 황금시대를 흥청망청 살던 네덜란드인들로 하여금 절제와 금욕, 칼빈주의의 정신을 무장시킨 처음이자 마지막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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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풍차와 튤립 / 출처 : www.beerforum.co.kr >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튤립 파동’은 ‘버블 경제’의 은유처럼 쓰인다. 튤립을 향한 맹목적인 판타지와 자본에 대한 욕망, 이를 동력으로 삼은 대중의 광기는 사실 지금으로서는 잘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것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 어처구니없는 희대의 사건을 실수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스스로 시대를 관통하는 삶의 교훈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린 마음, 실수를 돌아보기보다는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지혜, 그리고 잘못된 과거가 야기한 결과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 이것은 정치의 덕목이기도 하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과 이성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문장 역시 비단 투자 시장에서만 통용되는 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운 사실은 튤립으로 망할 뻔했던 네덜란드가 여전히 튤립을 매우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다. 판타지를 현실로 바꾸는데 필요한 것이 실천이듯, 튤립에 ‘세상에서 가장 탐나는 귀한 꽃’의 가치를 부여한 건 바로 꽃을 대하는 이들의 끊임없는 믿음과 애정이었다. 오는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일을 보람차게 잘 보내고 난 후 4월 16일부터 열리는 태안 튤립축제에 가 볼 생각이다. 모르긴 해도, 튤립이라는 꽃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보일 것 같다.

 

 

                                                                                                   글 / 정수안(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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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tu201604290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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