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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선거] 팬지의 욕심 없는 삶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6-03-25

 

 

 

[꽃과 선거] 팬지의 욕심 없는 삶

 

 

 

혹자는 “도심의 봄은 산수유가 피면서 열린다”라고 했지만, 나는 “도심의 봄은 도로변 화단 정원을 꽃방석처럼 연출하는 팬지로 열린다”라고 말을 바꾸고 싶다. 이맘때가 되면 아파트 화단도, 관공서 화단도, 학교 화단도, 수목원도, 한강의 공원도, 도시 구석구석이 모두 알록달록 총천연색 팬지의 무대가 된다. 그러니까 팬지는 바쁜 마음에 발끝만 보고 걷는 현대인들에게 봄을 맞이하는 일종의 의식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축하의 꽃인 셈이다. 그러나 언젠가 도로마다 줄지어 서 있는 플라타너스와 사거리 한가운데, 매연 속에서 피어난 팬지를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빨리 봄을 알리는 이 꽃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봄꽃’으로 각인된 적이 있었을까?

 

 

꽃축제와 유사한 많은 수의 팬지 사진  

 

해마다 봄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리는 갖가지 이름의 봄꽃 축제들로 떠들썩하다. 올 3월만 하더라도 올해 19회째를 맞이한 광양 매화축제가 3월 18일부터 27일까지, 바로 옆 동네 구례에서는 산수유꽃축제가 19일부터 27일까지 열린다. 또한 19일과 20일에는 양산에서 원동 매화축제가, 3월 26일부터 4월 3일까지는 의성 산수유꽃축제가 열린다. 4월로 넘어가면 더욱 화려해지는데, 이천 백사 산수유꽃축제를 시작으로 그 유명한 고양국제꽃박람회, 튤립 축제, 장미 축제, 철쭉 축제, 진달래 축제, 벚꽃 축제 등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어디서도 팬지 축제는 들어보지 못했다. 있다 하더라도 길만 나서면 팬지 천지이니 굳이 멀리 갈 일이 없다. 차라리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학교 근처 공원에 팬지를 심고 지역 신문에 보도된 초등학생에게는 바로 그날이 축제일 것이다.

 

 

 
<나폴레옹과 조제핀 / 출처 : www.yareah.com >

 

원산지인 지중해 연안에서도 보잘것없는 잡초로 피던 제비꽃과의 꽃, 팬지는 19세기 초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원예식물로 본격 거듭나게 되었다. 오랜 후문에 의하면 그 배경에는 나폴레옹이 있었다. 원래 식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폴레옹은 원예가 취미이자 직업이었던 조제핀과 결혼하면서 식물 애호가로 변신했다. 조제핀이 결혼식 때 지니고 있던 제비꽃을 특히 좋아해 ‘제비꽃 소대장’으로 불릴 정도였고, 동지를 확인하는 표식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패전 후 지중해 엘바 섬에 유배된 나폴레옹이 “제비꽃이 필 무렵 다시 돌아가겠다”라고 선언한 이후, 팬지는 지금도 서양에서 행운의 꽃으로 여겨진다.

 

 

 

<앙리 팡탱라투르 ‘팬지꽃이 있는 정물화’ / 출처 : www.artrenewal.org >

 

옛 유럽 사람들은 팬지의 모습을 보고 사람의 얼굴, 특히 골똘히 생각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을 연상했다. 그래서 ‘생각(thought)’을 뜻하는 프랑스어 ‘pensee’에서 꽃 이름 ‘Pansy’를 가져왔다. 1800년대에 활동한 프랑스 화가 앙리 팡탱라투르는 팬지의 이런 모습을 화폭에 담고 ‘팬지꽃이 있는 정물화’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그의 시선에 포착된 팬지는 정물화가 아니라 오히려 초상화의 주인공 같다. 특히 작가가 주목한 건 벽 쪽을 향해 꽃을 피워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사색하는 듯한 팬지의 모습이었다. 또한 셰익스피어의 <햄릿>(1601)에서 오필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There’s pansies, that’s for thoughts.” 인간의 내면을 그려낸 화가 앙리 루소가 어느 여인에게 팬지의 그림과 함께 ‘당신에게 나의 모든 팬지를 바칩니다’라는 편지를 쓴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팬지의 꽃말은 여전히 ‘사색’, ‘나를 생각해주세요’로 유명하다.

 

 

    

<천경자 ‘팬지’ / 출처 : www.seoulmuseum.org >

 

시간이 흐름에 따라 팬지의 상징성은 더욱 다양한 색을 띠게 됐다. 1800년대 말 미 대륙 전역을 지배하던 첨예한 종교 문제를 합리적으로 고찰할 것을 주장하며 소위 ‘자유사상(free thought)’ 운동을 전개한 사상가들은 팬지를 자유의 상징으로 차용했다. 희대의 로맨스뿐 아니라 미국 근대사의 격변기를 담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원작자인 마거릿 미첼이 초고에서 여주인공의 이름을 ‘스칼렛 오하라’가 아니라 ‘팬지 오하라’라 지은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오늘날에도 회자되는 오하라의 마지막 대사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와 팬지의 이미지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완벽하게 일치되었다. 한편 얼마 전 타계한 여류 미술가 천경자 화백이야말로 스칼렛 오하라와 같은 삶을 산 예술가다. 지난 1973년 천 화백은 마릴린 먼로의 얼굴 위에 팬지를 모자처럼 한껏 쌓아 둔 형상을 그린 작품 ‘팬지’를 발표했다. 예술과 삶, 그 어느 쪽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여성의 삶과 존재를 화폭에 남긴 천경자의 그림 속 팬지는 여배우보다 더 화려하고, 더 관능적이며, 또한 더 절실해 보인다.

 

 

팬지 꽃 사진 

 

 

역사상 그 어떤 꽃보다 강하고 지적인 면모로 당대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팬지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물론 지금은 수백 년 전 나폴레옹의 눈에 들어 새로운 이름을 얻기 전처럼 그저 작은 길 꽃으로 존재한다. 본래 꽃이란 일상과 삶, 기억과 추억의 결정적 순간을 기록한 이정표와 같은 존재이자 찬사의 대상이었지만, 팬지는 이정표가 되겠다는 야심도, 찬탄을 받겠다는 욕망도 없이 그저 묵묵히 도처에 피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봄이 오고 또 와도 사는 게 바빠 일부러 따로 매화 구경하러 순천 금둔사나 섬진강에 갈 여력이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정류장 옆에 색깔 별로 핀 팬지야말로 소박한 위로 혹은 격려가 될 것이다. 거대한 역사에 기록되고 개인의 삶에 각인되고자 과욕을 부리지 않는, 곁을 지키는 데 충실하고 그 묵묵함이 위안이 되는 정치는 올 봄 팬지에게서 배웠으면 싶은 미덕이다.

 

"꽃 심으면 안 필까 걱정하고/ 꽃 피면 또 질까 걱정하네/ 피고 짐이 모두 시름겨우니/ 꽃 심는 즐거움을 알지 못해라." 고려 때의 문인 이규보는 이런 시를 지었다. 꽃 심는 즐거움으로 상징되는 일상의 즐거움, 바로 ‘생생지락’을 깨닫게 하고 나누는 것이 바로 정치의 본질 아닐까. 이 모든 걱정에서 훌훌 자유로운 팬지는 올 봄에도 자동차 매연에, 궂은 날씨에, 세상의 무관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피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잠시 마음만 주면 된다.

  

  글/ 정수안(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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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fl201603240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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