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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 연애처럼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5-09-02

내일도 나를 사랑할 건가요?

 

 

나에겐 꽤 오래 알고 지낸 ‘남자사람 친구’가 하나 있다. 편의상 그를 A라 부르기로 하자. A는 이따금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너도 알잖아, 나한텐 너뿐인 거.” 가끔은 이런 말도 한다.

“우리 결혼하자. 내가 평생 아껴줄게. 너 술 마시고 들어오면 내가 아침에 해장국도 끓여주고 또...”

나는 그냥 웃는다.

“남자가 자존심 다 버리고 이렇게 매달리는데 웃지만 말고 뭐라도 대답을 좀 해봐.”

“대꾸할 가치가 없는 말은 그냥 웃어넘기라고 탈무드에 쓰여 있어.”

물론 <탈무드>에 그런 구절이 있을 리 없다. 결국 A의 사랑 고백과 청혼은 매번 “넌 너무 냉정해! 잔인한 여자!”라고 부르짖는 그의 농담 섞인 원망으로 끝이 난다.

 

love 

 

 

이렇게만 말하면 내가 남자를 살살 애태우면서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 앙큼한 고양이 같은 여자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냥 이렇게 오해받은 채로 가만히 있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진실을 밝혀야 할 것 같다. 내가 A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 구애를 진지하게 듣지 않고 그냥 웃어넘겨야 할 싱거운 소리로 취급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 먹고사는 일로 바쁜 A와 나는 1년에 많아야 겨우 두어 번 만난다. 그러니까 A는 평소엔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일언반구 연락도 없다가 1년에 평균 한 번꼴로 밑도 끝도 없이 사랑한다며 청혼을 하는 셈이다. 인간관계, 특히 연애에서 ‘지속성’은 당신의 마음 속에, 혹은 우리 사이에 진심이나 절실함, 강한 애정, 신뢰처럼 밀도 높은 감정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곤 한다. 한번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사랑한다고, 내 마음 속엔 너밖에 없다고 발랄하게 말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트 

 

 

하지만 내일도, 모레도, 한 달 후나 1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유난히 기분이 안 좋은 날이나 미처 예상치 못한 일로 골머리가 아플 때조차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결혼하자.” 같은 대단한 선언을 할 거라면 그 말의 무게를 뒷받침할 만한 크고 작은 행동도 필요하다. “결혼하면 아침에 해장국 끓여줄게.”라는 달달한 공약보다 믿음직한 것은 “아침 먹었어?” 하며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속이 허할까 걱정돼서 사 들고 온 아침 식사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꾸준히,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한 달 후나 1년 후에도… 일찍이 캐롤 킹은 이렇게 노래했다. “오늘 밤 그대의 눈에서 사랑이 반짝이네요. 하지만 그대, 내일도 날 사랑해줄 건가요?” 나는 이 말이 연애하는 이의 황홀한 불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기로 약속했다. 당신을 사랑하는 나는 당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에 기꺼이 내 몸을 실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어떨까? 당신은 내일도 나를 사랑할까?

 

프로포즈 

 

 

1년에 한 번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애정표현의 전부인 A는 내 눈에 도무지 진지해 보이지 않는다. 당연한 얘기다. 이런 식으로 띄엄띄엄 툭 던지는, 그나마 말뿐인 고백에 마음이 흔들리는 여자는 없다. 그렇게 보자면 그동안 나를 본체만체 내버려두다가 꼭 4~5년에 한 번씩 느닷없이 나타나 사랑한다고, 내가 너에게 이렇게나 관심이 많고 너의 소중한 도움이 없이는 내 미래 따위 존재할 수 없으며 나는 불철주야 오직 너의 행복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열변을 토하는 사람은 내 친구 A보다 더 믿을 수 없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선거 얘기다.


매번 선거철이 되면 온 동네를 도배한 플래카드가 야단스러운 구호로 내 살림살이와 등록금, 내 집 마련, 노후대책을 걱정해준다. 수수한 점퍼로 갈아입은 정치인들이 재래시장이나 노점에서 국밥과 호떡, 어묵, 떡볶이 등을 앞다투어 사 먹는 시기이기도 하다. 출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두 손으로 내 손을 부여잡고 자신과 꼭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자며, 자신을 믿고 맡겨달라며 간곡히 부탁할 때마다 “아…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우리는 이제 막 만난 사이인데…”라고 웅얼거리고 싶어진다.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설득하고 온갖 방법으로 그들에게 호소하는 절박한 마음은 잘 알겠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진심인가요? 내일도 나를, 우리를 이렇게 생각해줄 건가요?

 

약속 

 

 

꾸준함이 신뢰를 낳는다. 다음 선거 때는 당장 솔깃하고 듣기 좋은 공약보다는 지금 이 약속을 차근차근 지켜나갈 사람이라는 신뢰의 증거를 좀 더 많이, 자주 보고 싶다. ‘민생 안정’을 거창한 구호처럼 부르짖는 웅변가보다는 우리의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와 그것을 일상적으로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생활인에게 내 소중한 한 표를 주고 싶다. 정치는 선거 때에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진짜 정치는 선거라는 화려한 프러포즈가 끝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글 / 신윤영(<싱글즈> 피처디렉터)

첫눈에 ‘내 맏며느리 삼아야겠다.’고 결심한 면접관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잡지기자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엘르>, <더블유>, <인스타일> 등의 잡지를 거치며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누구의 맏며느리도 아니다. 연애를 커피에 비유한 책 <연애를 테이크아웃 하다>를 썼다.

 

 

 

정정당당스토리 

 

 

 

첨부파일 : 사랑.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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