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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선거역사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5-09-08

'에르네스토 세디요' 

멕시코 사상 가장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를 만들다 


미국 바로 아래의 나라 멕시코는 여러모로 불운한 나라다. 유럽 전역이 혁명에 휘말린 19세기, 스페인의 압제에서 벗어나긴 했으나 신흥 강국 미국에 국토의 상당 부분을 내주고 리오그란데 강 남쪽으로 찌그러져 있어야 했다. 한때 멕시코는 미국의 텍사스와 애리조나, 유타, 뉴멕시코, 캘리포니아까지 뻗어 있었던 대국이었다. (지금도 결코 작은 나라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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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지도 / 출처 : http://mapofworldmap.blogspot.com>

 


멕시코의 민주주의는 19세기부터 고달픈 팔자였다. 1877년 대통령에 당선된 포르피리오 디아스는 한때 그 이전의 독재자 산타 아나(영화 <알라모>에서 텍사스 독립군을 포위 공격한 그 장군이다)에 저항하는 자유주의 게릴라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그는 당선 뒤 안면을 바꾸고 자그마치 30년을 장기 집권한다. 그는 근대화를 강조하며 멕시코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

 


“전국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망이 깔리고 금은의 생산이 급증하고 석유가 개발되었으며, 해외자본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국가 경제의 핵심인 제조업과 무역 부문이 급성장했으며, 무엇보다도 정치적 안정이 주어졌다. 멕시코의 정치적 불안정은 전설적인데, 독립 이후 디아스의 취임 전까지 55년 동안 36명이 통치하면서 무려 75회의 대통령직 교체가 발생했었다. 그러나 혜택을 누리는 극소수에게 천국이었지만 토지를 빼앗긴 다수 국민들에게는 지옥이었다”(백종훈 칼럼 / 멕시코 혁명의 빛과 그림자, http://jgback.gnu.kr). 그리고 1910년 11월 20일 멕시코 혁명의 날이 밝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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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혁명 기간동안 촬영된 사진 /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리오그란데에서 치아파스까지 멕시코 전역에서 혁명의 불길이 솟았다. 북쪽의 농민군 지도자 판초 비야와 남쪽의 농민혁명군 수장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마데로의 호소에 호응하여 일어났고, 기타 지역에서도 소작인들의 봉기가 잇달아 디아스 정부군을 무찔렀다. 특히 1911년 5월 판초 비야의 농민군은 미국과의 국경 근처에서 벌어진 후아레스 전투에서 정부군에 완승을 거둬 디아스 정권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다. 결국 디아스는 30년 정권에서 손을 떼고 망명길에 오르고 마데로는 대통령이 된다.


하지만 마데로는 대통령이 된 후 개혁이라는 과제 앞에서 우유부단했고 그가 외친 구호들을 구체화하는데 있어 달팽이처럼 행동했다. 토지개혁을 열렬히 부르짖던 사파타는 마데로를 떠났고 반혁명 세력은 그를 고립시켰다. 마데로는 반혁명 반란군과 내통한 자신의 국방장관에게 암살된다. 그를 지지했던 사파타와 판초 비야 등도 모두 제 명에 살지 못하고 암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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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 카예스 / 출처 : 위키피디아>

 


마데로를 도와 싸웠으며 마데로를 암살한 국방장관과도 투쟁했던 정치인이자 군인이 있었다. 플루타르코 카예스. 그는 멕시코 혁명 후 세워진 멕시코 정부의 각료로 일하면서 권력에 다가섰고 1924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그 이후로도 후임 대통령들을 꼭두각시로 만들다시피 하며 배후의 실력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멕시코 역사에 그가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단연 민족혁명당의 창립이다.  처음에는 멕시코 혁명 세력을 대변하는 듯 보였던 이 민족혁명당은 멕시코혁명당, 제도혁명당 (PRI) 등으로 이름을 바꾸는데 혁명이라는 단어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보수적인 행보로 이후 멕시코 현대사를 지배한다. 1929년부터 2000년까지 제도혁명당은 한 번도 정권을 놓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제도혁명당은 특정한 세력을 기반으로 한 정당이라기보다는 기업가, 노동자, 농민 등 온갖 정치적 세력을 아우르는 통합체였고 당 내부에서 계급 간, 세력 간에 갈등을 조정하면서 멕시코를 통치했다.


그저 대통령 자리 하나만 차지한 게 아니라 의회의 거의 전 의석을 차고앉았던 것은 물론, 무려 60년간 멕시코 전체 32개 주의 주지사 자리가 제도혁명당의 차지였다. 제도혁명당을 장악한 정치 명문가들이 서로 손에 손잡고 멕시코라는 거대한 나라의 권력과 국익을 나눠 가졌다. 대통령 단임제를 채택한 나라답게 대통령은 꼬박꼬박 바뀌었지만 제도혁명당의 깃발은 70년간 멕시코시티의 중심가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다. 1968년 올림픽을 앞두고 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군대를 투입해 학생들을 서슴없이 학살해 버린 것도 제도혁명당이었고, 1988년 선거에서 패배할 위기에 처하자 과거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일대 정전을 일으킨 뒤 투표함을 바꿔 버린 것도 제도혁명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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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센테 폭스 / 출처 : http://www.columbia.co.cr>

 


90년대 들어 제도혁명당은 NAFTA 협정 체결을 비롯,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펴 나갔고 이에 국민들은 반발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장식품 같은 존재였던 야당들이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 1994년 1월 1일 사파티스타 반란군이 반란을 일으켜 한때 상당 부분을 장악하는 등 통치 체제에 심각한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1997년 제도혁명당은 의회에서도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여 70여 년 지속된 의회 지배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제 제도 혁명당에게 남은 것은, 그리고 제도 혁명당 반대 정파가 쟁취해야 할 자리는 대통령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 2000년 7월 2일 역사적인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71년 동안 펼쳐진 1당 장기 집권 종식을 기치를 내건 야당 주자는 비센테 폭스라는 자였다. 코카콜라 영업사원 출신으로 코카콜라 멕시코 지사장까지 역임한 그는 1987년 기업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야당인 국민행동당에 입당한 그는 60년 동안 주지사 자리 전부를 석권하고 있던 제도혁명당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과나후아토 주지사 자리를 차지한다. 적극적인 외국 자본 유치로 가난했던 과나후아토를 멕시코 31개 주 가운데 5위까지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한 그는 마침내 2000년 멕시코판 ‘바꿔’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70년을 이어온 제도혁명당 1당 정권을 거세게 몰아치게 된다. 가톨릭과 녹색당 등 야당의 지지까지 끌어모으고 새로운 미국과의 관계를 선언하는 등 변화를 선도한 폭스는 마침내 2000년 7월 2일 대통령에 당선된다. 근소한 차이일 것이라는 예상마저 깨버린 완승이었다. 이로써 멕시코는 무려 71년 만에 ‘평화적 정권 교체’라는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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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네스토 세디요 / 출처 : http://www.redpolitica.mx>

 


하지만 비센테 폭스 이전에 기억해야 할 사람은 제도혁명당 71년 집권의 마지막 대통령 에르네스토 세디요일 것이다. 그는 구시대의 마지막 주자이면서 새 시대의 열쇠를 만들어 비센테 폭스에게 맡긴 조력자였다. 1994년 권력을 잡은 그는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정치개혁을 단행한다. 선거관리기구의 공정성, 선거자금의 형평성, 대중매체의 공정성 확보 등을 담은 정치개혁법을 제출했고 1996년 멕시코 의회가 만장일치로 이를 통과시키면서 새 시대로 향하는 대로가 열린 것이다. 그 결과 1997년 총선에서 제도혁명당은 첫 패배를 당했고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정권을 잃지만 세디요 대통령은 끝까지 중립을 지키고 ‘멕시코 사상 가장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를 일궈 냄으로써 멕시코 민주주의의 새 장을 열었다. 제도혁명당(PRI) 내부에서 당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야당인 국민행동당(PAN)의 폭스 후보에게 지나치게 빨리 당선 축하를 보냈다고 볼멘소리를 했을 때 그는 이런 대꾸로 상대의 입을 막았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한 약속과 의무를 실행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필진 : 김형민 PD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 전공인 국사와 세계사를 틈틈히 공부해 SNS와 블로그에 '산하의 오역'이란 제목으로 역사관련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렇게 모은 글을 엮어 '그들이 살았던 오늘'의 제목으로 책을 냈다. 현재 sbscnbc에서 PD로 활동 중이다

*위 내용은 외부 필진의 개인적 의견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정당당스토리 


첨부파일 : mex.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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