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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선거이야기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5-08-24

영화 <이장과 군수(2007)>

 

 

이제 와서 2007년에 개봉한 <이장과 군수>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당연히 <삼시세끼 - 어촌편> 때문이다. 먹을 게 풍부한 바다의 본질이 드러나는 장면에 넋을 잃고, 차승원의 요리 솜씨에 침을 흘리며, 매사 여유로운 유해진의 모습에서 일상의 긴장을 무너뜨리면서 보던 이 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의 역사가 궁금했다. 그렇게 재미 삼아 <이장과 군수>를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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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장과 군수' 포스터 / 출처 : CJ 엔터테인먼트>


방송에서 밝혔듯이 두 사람은 <이장과 군수>에서 만나 지금까지 우정을 쌓았다. 영화 속의 조춘삼(차승원)과 노대규(유해진) 또한 같은 시골에서 자라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녔던 오랜 친구다. 하지만 대규는 서울로 가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했고, 춘삼은 시골에 남아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두 남자가 서른일곱 살이 되던 해, 그들은 다시 고향에서 만난다. 춘삼은 여전히 병든 아버지를 모시면서 고추농사를 하는 시골의 젊은 일꾼으로, 대규는 아름다운 아내와 딸이 있는 아빠로. 그런데 그들의 사이에 쉽게 넘기 힘든 강 하나가 생겼다. 춘삼은 마을 이장이 객사한 후 “이번에는 좀 젊은 놈으로 시켜”보라는 여론에 밀려 마을 이장이 됐고, 대규는  ‘젊은 일꾼’을 자처하며 나간 지방선거에서 군수로 당선됐다. 물론 오랜 친구가 이장과 군수로 다시 만났다는 설정으로만 이 영화를 설명하는 것은 많이 부족하다. 그들에게는 조금 더 깊은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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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장과 군수' 스틸컷 / 출처 : CJ 엔터테인먼트>

 


<이장과 군수>를 연출한 장규성 감독은 이전에 <선생 김봉두>와 <여선생, 여제자>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공통된 키워드는 ‘선생님’이고 그 때문에 ‘학교’와 ‘학생’이란 부가적인 키워드도 공유한다. <이장과 군수>의 실제적인 출발점도 바로 학교와 학생이다. 어린 시절의 춘삼과 대규는 모든 면에서 1, 2등을 다투던 사이였다. 아니, 사실 1등은 춘삼이가 했고 2등은 대규가 했다. 키도 춘삼이가 더 크고, 생긴 것도 더 잘 생겼다. (차승원과 유해진의 외모가 그렇듯이) 당연히 인기도 춘삼이가 더 많았다. 무엇보다 언제나 반장은 춘삼이가 했고, 대규는 부반장만 했다. 아마 그들의 같은 반 친구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춘삼이를 반장으로 기억할 것이고, 대규는 그냥 대규로 기억할 것이다. 한번 반장은 영원한 반장. 그처럼 ‘반장’이란 타이틀은 어렸을 때나 나이를 먹어서나 같은 반에서 생활한 모든 사람의 기억에 남아있다. 영화 속에서 대규가 지역의 군수가 되어 나타났을 때, 배알이 뒤틀리는 춘삼의 감정 또한 그렇게 비롯된 것이다. 언제나 반장은 나였는데… 저 녀석은 내 밑에서 부반장이나 하던 놈이었는데… 영화 속 춘삼과 대규가 각각 이장과 군수가 되어서도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싸우다가 결국 (남들에게나) 정치적인 대결을 벌이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춘삼은 정말 영원한 반장이 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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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장과 군수' 스틸컷 / 출처 : CJ 엔터테인먼트>

 


다소 코믹한 과장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춘삼의 이러한 욕망은 현실과 그리 동떨어진 게 아니다. 당장 동창회에만 나가도 과거 반장으로 불렸던 친구는 여전히 반장으로 불리니 말이다. 또 지금에 와서도 동창회의 스케줄을 반장(이었던 그 놈)이 결정하는 대로 따르는 내 모습을 종종 발견하기도 한다. 학창시절 반장은커녕 분단장도 해본 적이 없던 입장(맞다. 공부를 못했다)에서는 ‘반장’이라는 경험이 상당히 궁금하다. 아마도 그 경험은 군대에서 ‘분대장’을 하고, 직장에서 ‘팀장’을 맡는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말하자면 생애 최초로 선출직에 당선됐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커리어(성적 또는 친구들과의 관계 등)를 잘 관리했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 동안 계속해서 반장을 해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2015년 현재, 현역 의원 중 최다선 국회의원은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7선)이고, 역대 최다선 의원(9선)은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 박준규 전 국회의장이다. 하지만 12년간의 학창시절 동안 내내 반장으로 선출된 12선 출신의 엘리트들은 전국에 수두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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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장과 군수' 스틸컷 / 출처 : CJ 엔터테인먼트>

 


12번의 선거에서 과반수의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었다는 그 경험은 분명 성인이 된 이후에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남길 것이다. <이장과 군수>의 춘삼이 갑자기 나타난 대규로 인해 시골에 묻혀 살면서 잊고 있었던 ‘권력욕’이 다시 살아나 13번째 반장을 꿈꾸게 되는 경우다. 그런데 춘삼이가, 우리가 어린 시절에 만났던 반장이 12번이나 반장을 했던 게 오로지 그들의 능력 때문이었을까? 11번이나 반장을 했던 그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12번째 반장선거에 나섰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우리는 반장을 자주 경험했던 그 아이에게 반장을 시켰다. 실제 선거에서도 지역적 ‘텃밭’을 기반으로 한 ‘다선 의원’은 생겨난다. 그를 선출하고자 한 사람들의 생각 또한 어린 시절 반장선거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큰 문제가 없었다면, 그래도 하던 사람이 하는 게 낫지.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이 하던 사람보다 더 나을 거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선거를 대하는 대부분 사람들의 기대치가 어렸을 적 반장선거에 대한 기대치 정도라는 것이다. 어느 누가 반장선거를 하면서 ‘이 아이가 반장이 되면 우리 반이 학교에서 제일 좋은 반이 되겠구나!’ 싶어서 투표를 했을까? 그냥 학교에서 굳이 선거를 시키니까 한 거였고, 이왕 내가 표를 던져야 한다고 하니 그냥 하던 애가 하면 좋겠다 싶어서 투표를 했다. 그런데 반장이 잘 뽑힌다고 해서 내 성적이 오르는 건 아니지만,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선거를 잘하면 나와 가족과 아이들의 삶이 조금은 바뀔 수 있다. 두 선거는 처음부터 기대치가 달라야만 한다.

 
요즘 아이를 반장으로 선출시키려는 학부모들은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고 한다. ‘반장’이란 커리어가 입시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학원에서 선거 요령까지 배우게 하는 것이다. 프로필 사진이나 선거 포스터를 대신 만들어주는 업체도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반장선거의 풍경만 더 치열해졌을 뿐, ‘선거에 대한 기대치’를 경험하지 못하는 건 달라지지 않은 듯 보인다. 반장으로 뽑힌 아이에게 일정한 권한을 준 후, 나머지 학생들이 반장을 통해 무언가 바뀌고 있다는 걸 경험시키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변화가 없다면 12선의 반장은 계속 탄생할 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 갖게 될 선거에 대한 기대치도 딱 그 정도에 머물 것이다. 세상은 초등학교 반장선거가 ‘민주주의의 체험장’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민주주의 사회에서 갖는 권한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25년 전의 내가 그랬듯이, 지금의 아이들까지 선거에 대한 냉소를 너무 빨리 배울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다.

 

글 : 강병진 영화저널리스트,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뉴스 에디터

 

*위 내용은 외부 필진의 개인적 의견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정당당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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