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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선거이야기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5-08-24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Dear Doctor, 2009)>,

투표에 앞서 선택을 의심해 봐야 하는 이유


지난 2월 17일 종영된 SBS 드라마 <펀치>는 수많은 명대사를 들려주었다. 이미 한 달 전에 종영된 드라마인데도 아직도 종종 떠오르는 대사 중 하나는 극 중 이태준(조재현) 검찰총장의 말이다. "국민들이 웃기제. 저거 가려운데 쪼매만 긁어주면 이게 우에 살아왔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좋다고 만세 부른다 아이가.” 이와 비슷한 윤지숙(최명길) 법무부 장관의 대사도 있었다. 이태준 총장이 대통령을 꿈꾸며 고위 권력층 비리를 파고들려고 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국민들… 정치 경험 없는 새 얼굴에 열광해. 10조 원을 국고에 환수하고, 병역비리를 해결하고, 정치권 비리를 파헤친 검찰총장 출신의 대선 후보… 파괴력 있을 거야.” 


드라마에서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여러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조재현과 최명길이 말한 것처럼 선거에는 종종 새로운 얼굴이 등장해 기존 정치권에 쓴소리를 하거나, 그들과 다른 행보를 보이면서 유권자들의 스타가 된다. 유권자들이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런 정치인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가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난세였고 사람들은 언제나 영웅을 필요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새로운 영웅이 나타날 수 있는 제반 여건은 꽤 충분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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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 포스터 / 출처 : 영화사 진진>


하지만 드라마 <펀치>가 지적하는 것처럼, 자칫 이러한 열광은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한다. 그 사람이 “우에 살아왔는지 알아보지도 않는 건” 물론이고,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드러나도,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열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편이다. 이때의 열광은 ‘열광’이 아닌 ‘믿음’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믿음은 남들이 뭐라고 하건, 내가 믿는 저 사람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고집이 되곤 한다. 일단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믿을 때, 더 큰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그래야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Dear Doctor)>은 바로 이러한 믿음이 숨겨놓은 비밀에 관한 영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정치인이 아니다. 하지만 정치인보다 내 행복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된 의사가 주인공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약 1,500명의 주민이 사는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이미 누군가 사라진 상태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애타게 찾고 있다. 하얀색 가운만 남긴 채 사라진 그 남자는 이 마을의 의사 이노(쇼후쿠테이 쓰루베)다. 그는 4년간 무의촌이었던 이 마을에 정착해준 유일한 의사였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였을 테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노는 ‘환자의 눈을 보고, 환자의 형편을 생각하며, 환자의 입장에서 가장 최선인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방식’으로 환자를 대하는 따뜻한 의사였다. 도시에서 의대를 갓 졸업한 후, 이노의 밑에서 인턴생활을 하는 소마(에이타) 또한 이노의 진료방식이 의사가 갖추어야 할 진정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는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통해 ‘증상만 보고 환자는 보지 않는 진료’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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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 스틸컷 / 출처 : 영화사 진진>


시골에서의 보람찬 진료생활이 무르익어갈 때 즈음, 이노는 자식들을 도시로 보내고 홀로 늙어가는 여인 가츠코를 진료한다. 그의 위에는 궤양인지, 암인지 모를 무엇이 있다. 이노는 여전히 같은 태도다. “당신에게 최선인 방법을 따르도록 하지요.” 그러자 가츠코가 말한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함께 거짓말을 해주세요.” 지난 4년을 이 마을에서 존경받는 의사로 살았던 이노는 그 순간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환영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마을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노를 찾아 나선 형사들이 그의 정체를 밝혀낸다. 이노는 면허가 없는 가짜 의사였다. 어쩌면 그 자신도 깜빡 잊고 있었던 사실일지 모른다. 자신은 의사로서 살아왔고, 마을 사람들 또한 그를 의사로 인정해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거짓말 자체였던 자신이 정말 거짓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지난 4년간의 꿈이 깨져버린 것이다. 이노의 정체가 드러났지만, <우리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의 미스터리가 환기시키는 것은 이노의 정체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4년 동안 함께 했던 이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모두 이노를 사랑하면서도 왜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걸까? 그들은 왜 이노가 가짜 의사였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언제나 사람들의 형편과 속마음을 헤아리고, 격의 없는 이웃으로 지내던 그 사람에 대해서 왜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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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 스틸컷 / 출처 : 영화사 진진>


이 질문에 대한 첫 번째 힌트는 영화의 첫 장면이다. <우리 의사 선생님>은 하얀색 가운을 입은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어두운 시골 길을 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잠시 뒤 그가 마을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선생님이 왔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그는 의사가 아니었고, 그저 한 명의 주민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하얀색 가운을 입고 있기 때문에 ‘이노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처럼 하얀색 가운이 있다면 이 마을에서는 누구나 의사로, 즉 이노로 오해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힌트는 영화 속 마을 이장이 털어놓은 이노와의 첫 만남이다. “면사무소에서 건강검진을 할 때, 검진 트레일러 안에 있던 이노를 발견했어요. 그때 우리 마을의 의사가 되어달라고 했었지.” 아마도 과거 의사를 꿈꾸었던 이노는 병원 관련 일을 했을 테고, 하필 마을 이장을 만난 순간 하얀색 가운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낱 가운 하나로 의사 자격을 증명할 수 있는 이 마을에서 이노는 가는 곳마다 명의로서의 존경과 환호를 받았다. 웃음에 가려져 있지만 이노가 이 마을의 신처럼 떠받들어진 이유는 사실상 환자를 이해해주는 의사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운이 좋았던 몇몇 순간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이 그의 진짜 모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더 알 필요가 없었거나, 알면서도 의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묵인했거나, 알면서도 믿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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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 스틸컷 / 출처 : 영화사 진진>


즉, 이노를 진짜 의사로 만들었던 건, 그의 뛰어난 메소드 연기가 아니라 진짜 의사를 갖고 싶었던 사람들의 열망과 그로 인한 오해된 믿음이었던 셈이다. 그처럼 <우리 의사 선생님>은 믿음이 만들어낸 이상적인 행복과 믿음이 초래한 비극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영화다. 다시 말하자면, 믿음으로 만들어낸 행복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드라마 <펀치>에서 이태준 총장이 비웃고, 윤지숙 장관이 우려했던 것 또한 이 질문과 같은 맥락에 있다. <우리 의사 선생님>의 마을 사람들처럼 자신이 열광하는 새로운 얼굴에 대해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때, 자칫 선거는 상처의 기억이 될 수 있다. 그러니 표를 던지기에 앞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한 번은 더 의심해 보는 게 필요할 것이다. 내가 정말 저 사람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보고 파악했는지. 혹시 내가 행복하기 위해 허상을 믿은 건 아닌지.

 

글 : 강병진 영화저널리스트,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뉴스 에디터

*위 내용은 외부 필진의 개인적 의견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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