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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선거이야기

작성자 : 슈퍼관리자 등록일 : 2015-08-24

영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1939)> 

국회의원은 어떻게 일을 하는가?

1996년, 수능시험이 끝난 후 학교는 고3 학생들에게 여러 차례의 단체견학 기회를 제공했다. 박물관과 방송사를 거쳐 찾아간 마지막 장소가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사당이었다. 의원들이 빠져나간 후, 텅 빈 의회의 객석에 올라가 그냥 잠시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사실 정치에 아무런 관심이 없을 나이였고, 그래서 TV에 자주 나온 곳에 와봤다는 인상 정도로 남은 기억이다. 오히려 그때보다는 스마트폰 뉴스 속의 국회의사당이 더 흥미로운 것 같다. 국회의원들이 주고받는 메모와 그들의 스마트폰에 적힌 문자메시지 등이 사진기자의 렌즈에 포착돼 널리 퍼지는 시대이니 말이다. 하지만 국회의사당을 직접 가보았을 때나, 사진기자들의 클로즈업 사진이 나도는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건, 도대체 국회의사당 안에서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회의를 하고, 어떻게 제안을 하며 또 어떻게 토론하고 싸우고, 그 결과 어떻게 법안을 통과시키는가. 정말 막무가내로 싸우기만 하는 건가. 어쩌면 선거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은 우리가 뽑은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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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포스터 / 출처 : Columbia Pictures>

영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Mr. Smith Goes To Washington)>는 1939년에 제작된 흑백영화다. 본 사람은 많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이 본 이야기라고 생각할 게 분명하다. 한 상원의원이 임기 중 숨을 거둔 후, 의원이 대표했던 시의 주지사는 후임자를 알아보러 나선다. 고장을 위해 헌신할 만한 사람을 뽑으면 좋겠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시의 또 다른 상원의원인 ‘조셉 페인’과 그를 20년간, 후원해왔던 ‘짐 테일러’에게는 지금 댐 건설을 둘러싼 이익을 계산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냥 말 잘 듣고 꼭두각시 노릇을 할 사람이 필요한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동네 아이들이 사랑하는 남자 ‘제퍼슨 스미스’를 상원의원으로 지명한다. 나름의 신념으로 똘똘 뭉친 스미스는 워싱턴에 당도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거수기에 불과할 것이라며 비웃는다. 이에 대한 반격으로 스미스는 직접 법안을 제출하기로 한다. 고향에 소년들을 위한 야영캠프를 만들겠다는 것. 하지만 캠프의 부지는 조셉 페인과 짐 테일러가 만들려던 댐의 부지와 겹치는 곳이다. 스미스의 예상하지 못한 법안에 놀란 그들은 스미스에게 갖은 협박과 회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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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스틸컷 / 출처 : Columbia Pictures>

정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 하지만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이 현실정치를 무너뜨리는 이야기는 꽤 많다. 대통령과 닮은 사람의 백악관 모험담을 다룬 <데이브>가 있었고, 이 코너에서 소개했던 <헤드 오브 스테이트>도 그런 이야기였으며, <데이브>와 닮은꼴 한국영화인 <광해, 왕이 된 남자> 또한 모두 이 영화의 영향 아래에 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이후에 나온 어떤 영화도 이 작품처럼 국회의사당의 내부를 비추며 정치인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 지에 대해 자세히 보여주지는 않았다.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는 한 남자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의로운 싸움을 볼 수 있는 이야기인 동시에 국회의사당이라는 공간 자체에 특별한 캐릭터를 부여한 영화이기도 하다.


스미스가 의회에 처음으로 등원하는 날, 그를 맞이하는 건 귀여운 남자아이다. 단정한 머리와 옷차림을 한 소년은 스미스를 자리에 안내할 뿐만 아니라, 의회의 내부를 차근히 설명해준다. 관광객이 앉는 자리와 기자들이 앉는 자리, 백악관에서 나온 사람들의 자리는 항상 비워놔야 한다는 세세한 사실들이 소년의 입에서 나온다. 스미스가 앉을 자리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주 좋은 자리에요. 특히 발언을 많이 하고 싶은 의원에게는 가장 좋은 자리죠.” 이 아이는 의회에서 의원들의 서류를 전해주고, 모자를 받아주며 스케쥴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를 비롯한 약 10명가량의 아이들이 있다. 스미스의 눈에 비친 의회란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한 곳이다. 영화는 그가 다른 의원들이 발언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의원선서를 하는 장면까지 긴 시간을 할애한다. 이 공간, 그리고 이 공간에 들어온 스미스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는 점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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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스틸컷 / 출처 : Columbia Pictures>

 

영화 속 의회에서 가장 중요한 권한은 바로 ‘발언권’이다. 스미스가 발언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원으로서 선서를 한 후 의원자격을 인정받아야 한다. 의원이 된 후에도 의장이 발언권을 주어야만 발언을 할 수 있다. 기자들의 조롱을 참지 못한 그가 반격할 때 쓰는 무기도 바로 이 ‘발언권’이다. 영화는 스미스의 비서인 ‘손더스’의 말을 통해 하나의 정책이 상정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드러낸다. 하지만 모든 걸 의지로 해결하려는 스미스는 단 하룻밤 만에 ‘소년들을 위한 야영캠프’ 건설 제안서를 작성하고, 역시 이 또한 의회에서 발언권을 얻어 발표한다. 물론 그가 내놓은 정책은 그를 워싱턴으로 이끌어준 사람들의 이익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를 저지하려는 의원들은 또다시 발언권을 얻어 음모를 짜기 시작한다.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는 개봉 당시 워싱턴의 정계인사들로부터 개봉금지 압력을 받기도 했다. 정치권의 부패를 고발하는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영화 속의 의원들이 바보같이 나온다는 이유였다. 이 영화를 연출한 ‘프랭크 카프라’는 그래서 더더욱 미국의 행정제도가 얼마나 제대로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영화 속의 ‘발언권’은 그중 하나다. 조셉 페인과 짐 테일러의 계략으로 의회에서 제명될 위기에 처한 스미스는 마지막 반격을 준비한다. 그는 의회에서 발언권을 얻은 후, 자신을 둘러싼 계략을 낱낱이 폭로한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의원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하고 급기야 퇴장해 버린다. 이때 프랭크 카프라가 스미스에게 쥐어주는 무기는 바로 ‘필리버스터’라 불리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다. 영화 속에서 스미스가 책을 통해 설명하는 이 권한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의사진행법 제5조 및 상원의원규칙 제3조에 따라 과반수 상원의원이 참석한 공개토론이 아닐 때는 저 같은 사람도 퇴장한 의원들의 출석 요청을 제의할 수 있으니… 의장님. 즉시 출석을 요청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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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스틸컷 / 출처 : Columbia Pictures>

영화 속의 스미스는 장장 24시간 동안 연설을 한다. (물론 지루하게 묘사된 건 아니다) 의원들이 자신의 진심을 알아줄 때까지, 그리고 자신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모든 걸 내던지는 장면이다. 실제 필리버스터는 발언 도중 자리에 앉거나 기대는 순간 발언권의 효력이 상실된다. 스미스 역시 24시간을 서서 버틴다. 다른 의원들 또한 집에도 못 가고 의회에 앉아있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영화는 결국 스미스가 의회에서 쓰러진 후, 이를 본 조셉 페인이 죄책감에 모든 걸 고백하는 상황으로 그의 승리를 묘사한다. 진실한 정치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이 제도가 어떻게 잘 구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다.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는 이렇듯 한 남자의 영웅담인 동시에 정치풍자극이고, 무엇보다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자기 일을 하는지 자세히 묘사하는 영화다.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걸작으로 회자되는 영화가 된 것이다. 굳이 걸작은 아니더라도,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에 관한 영화도 한 편 정도는 나오는 게 좋지 않을까? 정치인들이 얼마나 중요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지는 사실 정치인들밖에 모르는 것 같다. 투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정치인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알게 된다면, 선거 또한 더 흥미로운 이벤트가 될 텐데 말이다. 싸우거나, 졸거나, 잡담을 나누는 모습만 보다 보니 정치에 회의적일 수밖에. 그런 영화가 못 나온다면 스미스씨 같은 정치인이 나와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그를 통해서 국회의사당 자체를 하나의 드라마틱한 공간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글 : 강병진 영화저널리스트,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뉴스 에디터

*위 내용은 외부 필진의 개인적 의견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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